미제, 아무도 모른다

27화-실토

by 해금이

그 얼굴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알 수 있었다. 세월에 눌려 눈꺼풀이 처지고, 주름이 늘었을 뿐, 만화 속 악당을 연상케 하는 매부리코와 나를 유린하던 입술은 그대로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영상으로 마주한 오락실 아저씨, 조하대. 그가 오락실 아저씨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며, 강렬한 거부감이 되살아났다.


그가 내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짐승같이 헐떡이던 그 밤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하늘에 떠 있던 초승달,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공기, 숨 쉴 때마다 목구멍을 죄어오던 촉수 같은 그의 혓바닥. 다급하고 거친 손길이 팬티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공포와 당혹스러움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졌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공포로 몰아넣은 지점은 연두가 사라진 밤의 기억이다.


늦은 저녁, 같이 놀자고 나를 찾아왔던 연두를 아빠 때문에 되돌려 보내야 했던 그 밤. 연두를 둘러싼 배경에 조하대가 있었다. 만리장성 맞은편, 오락실 앞 낮은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는 하이에나 같았다. 음험한 시선을 감추려는 듯 반쯤 내리 깐 눈과 먹이감을 발견하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얼굴과 나이를 달리 했지만 괴물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한결 같았다. 사촌 오빠, 고모부, 오락실 아저씨. 그들의 음흉한 눈빛과 표정에서 곧 있어 닥쳐올 불행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연두야, 위험해!’


진작, 말해 줬어야 했다. 악몽 같던 그날 밤, 연두가 나를 구해줬을 때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그랬다면, 지금껏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비록, 오락실 아저씨와 연두의 실종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저 괴물이 연두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까?’

‘저 괴물 때문에 연두가 없어진 것은 아닐까?’


문득, 영상 속 조하대 옆에 서 있는 어린 화진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혜영이를 찾기 위해 들춰본 졸업앨범 속 내 얼굴과 같았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맞을 것이다. 고개를 드는 두려움에 키보드 앞 손가락이 속절없이 떨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진동하는 핸드폰 액정 위로 연준이의 이름이 떴다. 이 사실을 연준이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괜한 말로 연준이까지 혼란 속에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짧은 심호흡 후에 전화를 받았다.


-누나! 지금, 누나 아버지 인터뷰하러 만리장성 가는데 올 수 있어요?

-지금?


벽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이 시간에 연준이와 인터뷰를 하겠다는 아빠의 속내가 빤히 보였다. 매일, 술 마시는 핑계가 필요한 아빠에게 연준이는 누구보다 좋은 술상대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기자고, 아빠의 술주정도 편견 없이 받아 줄 최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근 20년 이상 아빠의 술주정에 시달려 온 나였기에, 그 자리만은 동석을 피하고 싶었다.


“내가 니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긴 알아?”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

“내 이야기 좀 들어 보래.”


생각만으로도 돌림노래 같은 레퍼토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지금은 ‘조하대’가 오락실 아저씨였다는 사실을 감당하는 것 만도 벅찼다. 주절거림에 가까운 아빠의 술주정을 듣느니, 프리뷰만 백날천날 하는 것이 더 낫다.


-어쩌지?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곤란한데…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추미영 관련해서 새로운 내용 있으면 누나한테 알려 줄게요.

-그래, 고마워. 근데, 연준아….


오늘 오후, 연준이는 오락실 아저씨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영진빌딩으로 간다고 했다. 녀석은 오락실 아저씨가 ‘조하대’인 것을 알까?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나와 조하대 사이에 있었던 끔찍한 일은 접어두고 서라도, 오락실 아저씨와 조하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려주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망설이고 있는데 익숙한 도어벨 소리가 수화기로부터 흘러나왔다. 연준이가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무작정, 조하대가 오락실 아저씨라고 말하면, 연준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아빠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지금은 너무 당황스러워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아니야, 인터뷰 끝나고 통화해. 그때, 얘기…


-쨍그랑! 우당탕탕!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전화상이지만, 너무 놀라 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왜 가만 있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냐고!


부끄럽고 참담했다. 이번에는, 술주정도 모자라 연준이 앞에서까지 행패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 불 보듯 뻔했다. 인터뷰 약속까지 해 놓고, 한두 잔 마시다 보니 통제력을 상실해서 혼자 만취해 버린 것이다. 더 추한 꼴을 보기전에 엄마가 빨리 말려 주길 바라는 것 외에 방법은 없다. 아랫입술을 짓씹어 가며 아빠에 대한 분노를 삼키는 중에 이상한 말이 들렸다.


-왜? 지금이라도 감옥에 처넣게? 처 넣어! 처 넣으라고! 이 개 호로새끼야! 나도 이제 지겨워. 매일매일이 악몽이었다고. 이제, 제발, 발 좀 뻗고 자 보자.


감정에 짓눌려 악을 쓰듯 내뱉는 말 속에는 자포자기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 무슨 소리지? 아빠가 왜 연준이에게 이런 말을 하지? 영상 속 조하대의 사진을 봤을 때보다 더욱 심장이 뛰었다. 불길한 예감에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요동쳤다. 전화기 너머로 아빠임이 분명한 목소리가 연준이를 향해 외쳤다.


-내가 네 아빠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돈 없어서 빌빌거리는 거 우리 주방에 취직시켜 줬어! 이사 갈 때는 퇴직금도 한 밑천 챙겨줬는데, 나한테 왜 이래!

-아저씨를 위한 거였잖아요. 죄책감 줄이려고.


착 가라앉은 연준이의 목소리에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반면, 아빠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파멸을 감수하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말끝마다 떨림이 묻어났고, 그 떨림 속에는 억울함과 두려움 그리고 초조함이 뒤섞여 있었다.


-네가 뭘 알아! 그나마 내가 있었으니까…

-아니오. 아저씨도 그 변태 새끼랑 다를 게 없어요.

-뭐? 날 어떻게 그딴 새끼랑!

-왜? 억울한가? 아저씨는 그 변태새끼랑 뭐가 좀 달라요? 아~, 조하대가 누나한테 몹쓸 짓 해서 그 새끼 흠씬 패 준거?

-그래! 내가 그랬어. 다시는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죽을 만큼 패 줬다고.

-칭찬이라도 해 드려요? 박수라도 쳐 드릴까?


저들의 대화가 사실일 리 없다. 연준이는 분명 뭔가를 잘 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하고, 아빠는 술주정을 하다 못해 헛소리까지 하는 거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나름 상황을 파악해 보려 했지만, 연준이가 했던 말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몹쓸 짓.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의심만 하고 있던 일들이 현실일까 두려웠다. 조하대와 연두의 실종이 무관하기를 빌고 또 빌어왔다.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어린 연두가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힘이 빠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듣기 두려웠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이 밝혀지며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만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대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적어도, 당신들이 인간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차갑게 식어가는 우리 누나를, 그 어린 아이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다루면 안 되는 거였다고. 만약, 거기 있던 여자애가 당신 딸이면 어땠을 것 같아?

-죽으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온 가족이 약 먹고 죽으려고 했어! 너도 알 거야. 청운각 이사 오고, 만리장성 파리 날렸던 거. 거기에다, 진희는 아픈데 돈은 없고… 늘어나는 사채 빚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근데, 조사장이 그날 일 비밀로 해주면… 새 출발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어. 우리 다섯 식구 살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아이고… 미안하다. 그러니, 제발, 우리 진희 한테는 비밀로 해 다오.


연준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의 자백이 이어졌다. 빨리,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면 모든 일을 돌이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처럼, 아빠는 과거의 죄를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말하는 내내 참회의 눈물과 사죄가 뒤섞여 있었지만, 결국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망해가는 가게, 아픈 딸, 감당할 수 없는 사채빚. 안타까운 사정임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연두의 죽음을 은폐한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좋아요. 진희 누나한테 말 안 할게요. 대신, 우리 누나 어디 있는 지만 말해줘요.

-우리 가족을 걸고 맹세하마. 난 진짜 아무것도 몰라. 그 때, 조사장이 그대로 차 트렁크에 싫고 가버렸어. 진짜야.


사정을 하듯 절박하게 쏟아내는 아빠의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인간성을 내다버린 비정함만은 오롯이 느껴졌다. 아빠를 향한 분노와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어느 새 아빠의 만행을 두둔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만일, 아빠가 그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당시,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을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친척 어른들에게 맡겨지며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어쩌면 이전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몰랐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힘 없는 여자 아이. 세상은 약자에게 한없이 잔인하고 엄혹하다. 심지어, 친인척 간이라도 예외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란 인간에 대해 환멸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연두를 잃은 충격을 핑계 삼아, 스스로가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 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자기합리화 했다. 암울한 학창시절을 연두의 실종과 연관 지으며 자기연민에 빠져 살았지만, 결론은, 허진희 자체가 애초에 글러먹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에게 아빠를 욕하고 미워할 자격은 없다. 평소, 그토록 경멸해 마지 않던 아빠의 단점을 그대로 빼다 박은 나는 아빠 그 자체였다.


-뚝!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깬 채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았다. 묵직한 충격이 가해져 한 동안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불현듯, 헉헉 눈물이 차올라서 숨이 가파졌다. 찌릿한 가슴의 통증도 이어졌다.


“흑…”


연두를 향한 죄스러움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 아홉살 허진희가 된 것 같았다. 친척집을 전전하는 동안 누구도 나를 따뜻이 보듬어 주지 않았다. 귀찮은 듯 쳐다보다, 때로는 건드려보다, 나중에는 짓밟았다. 본가로 돌아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부모조차 썩어 들어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때, 연두가 나타났다. 경계심으로 가득한 나의 벽을 허물어트렸고, 마음 속 썩다 못해 악취가 나는 오물들을 치워주었다. 대신, 그 자리에 씨앗을 심고 물을 준 다음 예쁘다 말해주었다. 연두가 건네는 따뜻한 온기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랬는데… 연두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그런 연두가 내내 그리웠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니,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흐릿해진 시야로, 영상 속 조하대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과거의 기억에 매몰돼 잊고 있었지만, 이제 오락실 아저씨는 죽었다. 그런데, 연준이는 어떻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내가 오락실 아저씨의 정체를 알려주기 전부터 녀석은 이미 오락실 아저씨가 조하대인 것을 알고 있었다.


의문점은 이것 만이 아니다. 연준이가 한 말에 따르면, 연두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성인 남성이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상해를 입힐지 언정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는 없다. 혹시, 범죄를 저지르는 중에 조하대가 연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일까? 이후, 죽은 연두를 차 트렁크에 실은 다음 시신을 유기했을까?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연준이를 만나야 했다. 당장이라도 만나서 그 날의 일을 묻고 싶었다. 연두가 실종되던 날 아빠는 어떻게 그 사건에 엮이게 되었는지, 연두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락실 아저씨의 정체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준이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어쨌거나, 나는 가해자의 딸이다. 녀석 앞에 서는 일이 염치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쉬운 방법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만은 과거의 일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아빠의 절규 섞인 부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뒤늦게, 아빠를 이해하는 것도, 감싸는 것도 아니다. 한 순간도 발 뻗고 잔 적이 없다는 아빠, 매일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죄책감이 좀 더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연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결국, 진실을 알려면 연준이를 만나야 했다. 그러나, 전화를 걸 용기도, 얼굴을 볼 면목도 없었다. 그저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묵묵히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불안한 마음에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데, 전화가 왔다. 연준이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녀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저에요. 우리 만나야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