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식탁 8 - 소풍 가고 싶어지는 날
선물로 받은 마른 김이 많다. 그걸 본 남편이 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초보 주부 미션 시작!
살면서 본 건 많아서 김밥 만드는 것도 뭐 간단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김을 꺼내서 밥을 넓게 펴 바르고 단무지, 채 썰어 볶은 당근을 올렸다. 살짝 데쳐 간을 한 시금치까지 올리고 나니 제법 김밥이 되어 가는 듯했다.
마음이 너무 급한 나. 우선 말아 볼까.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뭐지 뭐가 없는 걸까?
뭐가 빠졌지?
그렇다! 발을 깔지 않고 김밥을 말았다!
세상에!
기본도 모르는 초보 주부라니.
다시 두 번째 도전!
이번에는 발을 깔고 하나하나 재료를 체크해서 올렸다.
레몬과 소금으로 간을 한 오이. 당근, 시금치, 단무지, 우엉, 계란 지단. 그리고 김밥 전용 햄까지!
이번에는 실수가 없다.
좋았어!
이런 게 다 들어가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김 끝에 밥일을 뭉개놓고 김이 풀리지 않도록 해둔다. 왠지 모르게 비법을 알고 있는 느낌이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차오른다. 왠지 내가 기술을 갖고 기술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해진다.
제법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예쁘게 써는 건 최대 난제!
어릴 때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줬는데 그 많은 양의 밥과 부재료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더랬다. 얇게 썰어서 다섯 형제의 도시락에 담는 것도 금세였고, 모양은 말해 무엇하리. 꼬다리 주워 먹는 재미에, 예쁘게 모양이 만들어지는 도시락을 지켜보느라 엄마 곁을 떠나지 못했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칼이 문제일까?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던데, 역시 김밥 고수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제 멋대로 생신 김밥을 보니 라면이 급 당기고!
주가 라면인지 김밥인제 헷갈린 식탁, 오늘의 정릉식탁이다.
남은 김밥을 담아보니 총천연의 현란한 자유로움이!
역시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야 제 맛.
소풍 갈 땐 집 앞 분식집 김밥을 사가야지.
이렇게 김밥도 요리 리스트에서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