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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Sep 10. 2024

설흔, 낯설고 흔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30주년 기념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었고 연극 <설흔>도 그 중 하나였다.


1. 한국예술종합학교, 낯설고 흔한

고등학교 때부터 드라마 대본과 소설을 썼다. 따로 배우거나 공부한 적은 없었기에 거칠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내 머릿속에서 뛰놀던 인물들을 꺼내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에 흠뻑 빠져 있었다. 누군가 그 세계를 염탐하고 관망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노트에 깨끗하게 옮겨 적은 소설을 친구들에게 돌려 읽히고 감상을 받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때였지만 독자가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앙케트가 흔했던 시절이었지만 창작한 소설 노트를 돌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목표한 대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친구들은 나의 자유분방한 표현방식을 응원했고 특별하다 칭송해 주었다.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는 나 외에도 글을 쓰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사랑과 상실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친구는 성경을 탐독하며 그와 비슷한 글을 썼다. 교복을 제대로 입고 오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성경을 펼쳐 놓고 볼펜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정적으로 필사를 해도 아무도 그 친구를 불러 세우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목에서 많은 친구들은 의아해했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그 친구를 대단하게 여겼다. 여학생 두발 규정이 귀밑 3센티미터였을 시절이었고, 남학생의 앞 머리카락이 좀 길다 싶으면 교련선생이 직접 바리깡을 대고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고속도로를 만들어도 대들지 못했던 때였다. 그런데, 그 친구만은 유일하게 모든 규정과 규칙에서 자유로웠다. 나는 친구의 그런 불가침의 상태와 상황을 잠시 동경하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너무나 신성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나를 따로 불러낸 것이었다. 디귿자 모양의 학교 건물 가운데, 중원처럼 하늘과 맞닿은 중앙 현관에서 친구는 내게 대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대체로 개념이 없었던 나는 주로 듣는 편이었고 친구는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의 말속에서 우리는 모종의 공통분모가 있는 듯 느껴졌는데, 그건 우리 둘 다 모두가 알 만큼 글을 쓴다는 이유에서였다. 친구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눈빛은 경건했다. 억지스럽게도 왠지 거역할 수 없는 신탁을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만큼이나 집중해서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데가 있어."


그때 친구의 입에서 나온 학교가 '한국예술종합학교'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학교였다. 아니, 그 당시에는 대학에 대한 다른 구체적인 열망이 존재하지도 않았더랬다. 그런데 학교 이름을 듣고, 전형일정을 전해 듣자마자 내 잔잔했던 심연에 파문이 일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너무 뛰어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특차 지원 전형 이후에 있었던 한예종 입시는 정시 지원과는 별도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원할 대학에 대해 들은 만큼 소상히 전달했다. 그리고 전형료 5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엄마의 표정에서 돈 5만 원이 아까워 죽겠다는 게 읽혔다. 역시나 겉과 속이 한결같은 엄마는 불확실과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꼭 봐야겠어?"라고 물었다. 나는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시험 한 번 보는 것도 못할 쏘냐!' 싶어 그렇다고 말했다.

엄마의 예지력은 맞아떨어졌고, 나는 입시에 떨어졌다.


서른두 살이 되었을 때 나는 한예종에 입학했다. 돌고 돌아서. 죽을 고비를 넘긴 직후에 택한 결정이었다. 죽기 전에 꼭 도전해보고 싶은 내 인생의 과제가 한예종 입학이라니! 어쩌면 나는 신탁에 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한예종에 입학해서 예술사와 예술 전문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몇 년 동안 글쓰기 강의를 나가기도 했으니, 거의 12~3년을 몸담은 셈이다. 내 생애 가장 오래 다녔던 학교였고, 그만큼 애착과 추억이 남달랐다.



2. 설흔

<설흔>의 희곡은 '창작집단 독'이 집필했다. 한예종을 함께 다녔던 9명의 작가들이 모여 주제를 정해 같이 희곡을 쓰고 작품을 내면서 지금까지도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자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동인을 결성해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게 얼마나 에너지가 필요하고 더러 고단해지눈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선배들에게 늘 대단함을 느끼고 있다. 벌써 두 권의 희곡집이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낼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팬데믹 플레이> 제철소

<설흔>은 6개의 단막으로 이어진다. '계란 한 판(조정일 작)'으로 문을 열고 '상식이네 떡볶이(임상미 작)', '우리 이야기를 다시 쓸 때(박춘근 작)', '서른, 작게 소분한 1인용 슬픔(고재귀 작)'. '즉흥연기(김태형 작)'로 이어지며 '서른, 내가 나를 찾아와서 말해주기를(유희경 작)'로 마무리된다.


'계란 한 판'은 막 서른이 된 청년이 스스로에게 선물하고자 계란 한 판을 사러 계란 가게에 가지만 계란을 팔지 않겠다는 주인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계란을 팔지 못하는 이유인즉, 계란을 싣고 오다가 다른 차들이 빵빵거리는 통에 계란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제야 청년도 느리게 가는 차들에게 자신도 그렇게 거친 마음을 품은 적이 있노라 말한다. 쉽게 놀라고 깨지고 멍드는 계란, 그와 다르지 않은 청년의 마음, 그 마음을 알아주는 계란가게 주인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빵빵!'하지 않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청년이나, 계란이나, 30주년을 맞은 한예종 연극원이나, 그곳을 터 삼아 배우고 성장한 배우들이나 작가들이나, 그 외 모두에게 빨리 가라고 '빵빵'거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조정일 작가 특유의 사소한 것을 특별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또, 목격하게 된다.


한예종 석관 캠퍼스가 있는 석관동은 도시 미화 사업이 한창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학교 근처를 지날 때마다 새로 들어선 건물이나 아파트 단지를 발견하고 놀랄 때가 많다. <상식이네 떡볶이>는 석관동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 미화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석관동 맛집인 떡볶이 집이 마지막 영업을 하는 날, 30년 간 떡볶이 맛집을 운영해 온 70대 엄마와 변변한 대표작이 없는 무대 디자이너인 삼십 대 중반이 된 딸 상식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도시 미화 사업 담당자인 상식의 옛 남자친구 순호가 등장하면서 둘 사이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가 언뜻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도시 미화를 명목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수많은 시간과 인생의 켜들은 이렇게 '미화'의 목적 뒤로 밀려나게 되는 건가 싶었다. 울퉁불퉁하고 울긋불긋한 곳에서 시간을 보냈던 예비 예술가들은 이제 직선과 네모가 많아진 동네 석관동에서 사라진 기억의 터를 겨우 더듬더듬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기억도 언젠가는 희미해지겠지. 30년이 지탱해 온 여러 마음들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작품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다시 쓸 때>는 3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 중인 작가 두현의 집에 친구 경욱이 찾아오면서 전개된다. 두현은 원고를 완성하지 못한 괴로움에 아내까지 사라진 것까지 겹쳐 어쩔 줄 몰라한다. 아내가 남기고 간 단서는 두현의 결혼선물로 경욱이 선물한 양주. 아내는 양주를 따놓고 집을 나섰고, 두 남자는 아내가 남긴 단서들을 되짚으며 실마리를 풀어간다. 집을 나서기 전 아내는 경욱이 남편 두현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급기야 결혼 30주년이 되면 따기로 한 양주를 두현과 경욱이 함께 한 30년을 기념하며 따놓았다. 오래 묵혀도 먹기 좋은 술처럼, 더 진하고 깊은 관계가 되어야 할 부부, 그리고 우정 그 이상의 마음으로 두현 주위를 돌았을 경욱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두현과 경욱이 아내가 남기고 간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고 리드미컬해서 보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경욱이 몸에 착 붙는 니트를 입고, 두현이 스트레이트 라인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도 좋은 설정 같았다. 무엇보다도 연결되지 않은 채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세 사람의 직선이 구체화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서른, 작게 소분한 1인용 슬픔>은 어느 순간 서른 살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루이체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선옥과 그의 딸 선재 그리고 선재의 친구 현수가 극을 끌고 간다. 선재는 검은 봉지를 들고 30년 전 자신이 키웠던 고양이 두부'를 찾으며 무대에 오른다. 선옥은 선재를 고양이로 인식하는데 선재는 그런 상황 때문에 선옥과의 이별을 고민하고, 동시에 선옥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공원에 앉아 서른 살의 연극배우였던 시절로 돌아가 대사를 읊던 선옥이 퇴장하고 선재와 곰탈을 쓴 현수가 등장해 배우로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다. 30년 전 선옥이나, 현재의 선재나 현수의 배우로서의 고민은 다르지 않다. 기억이 온전치 않은 선옥이나 불투명한 미래와 분투하며 자신을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 속에 놓인 선재나,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수나 모두 짊어져야 하는 슬픔의 무게가 있다. 하지만 현수가 선옥이 놓고 간 검은 봉지 안에서 발견한 소주 한 병과 그 외의 어떤 물건에 대해 함구하며 장면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소분된 슬픔을 오픈해 공유하지 않는 것, 그 자체에 방점을 찍게 된다. 관객은 그 함구된 사물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선옥이 품었던 극단의 선택이 유예되었음에 안도하게 되고, 동시에 조금 더 세 사람의 앞날을 응원하게 된다.


<즉흥연기>는 30주년 기념 공연 오디션을 보러 온 연극배우 나명과 30년 전 함께 학교를 다녔던 은호의 등장으로 극적 긴장을 이어간다. 무언가 맺힌 게 많은 것 같은 나명은 전도유망했던 은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등지고 사라진 것에 대해 재차 묻는다. 나명이 깊게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은호, 자신의 딸이 나명의 팬이라며 셀카를 찍자고 한다. 나명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까지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계속해서 날 선 대답과 질문으로 은호를 대하던 나명은 은호의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해 지금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호는 결국 그렇게 꿈꿔왔던 오디션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나명은 마지막으로 자신과의 셀카를 찍어주며 웃는다. 최선을 다해 '즉흥연기'를 해 보인다.

나는 두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몇 번 눈물을 흘렸다. 같은 분야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품을 수 있는 애착과 질투, 그보다 더 깊은 존중이 깔려 있음을 느껴서였다. 그 복잡하고 옹졸한 마음을 어쩌면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싶었다.


<서른, 내가 나를 찾아와서 말해주기를>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오기에게 30년 뒤의 오기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 앞에 선 오기에게 나타난 나이 든 오기는 태연하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30주년을 맞은 연극원이, 처음 개원했을 그때를 떠올리며 했을 법한 말들이다.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연극을 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우리가 들었을 법한 말들이다. 30년을 잘 보내고 건강하게 살아남아, 현재의 오기를 다독다독할 수 있는 미래의 오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말들이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괜찮을 것이며,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낸다면, 그렇게 진행할 힘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한 응원이 또 어디 있을까 말이다.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효능은 자기 위로와 위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심력이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원심력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완벽하게 펼쳐 보이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이 열망과 에너지를 가지고 가속도를 붙여 아주 작게라도 나아갈 것이라고 왜 말하지 못하겠는가.




<설흔> 무대가 특별했던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첩'된 것들의 향연이라는 것. 실재의 배우의 삶과, 연기하는 역할 사이의 중첩, 연극인지 사실인지 그 묘한 사이를 오가는 매력이 넘쳤다. 30주년 기념 공연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오래간만에 무대에 선 배우의 상황이 중첩되고, 현재 고민하는 상황이 중첩되고, 마감하지 못하는 작가의 고뇌가 중첩된다. 또, 매 극마다 극을 잇듯 배역이 중첩된다. 극 하나의 배역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극과 저 극 사이를 오가며 하나의 역할을 이어간다.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서른'의 무대 속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중첩되어 있는 것처럼.

무대의 활용이 무척이나 대단하게 보였던 연극이었다. 장치가 많지도 않았는데, 모든 기능이 잘 소화되었고 적절했다. 특히 마지막에 계란 탑차가 백스테이지를 향해 사선으로 서 있는 장면을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예종이 앞으로 지나갈 길이 어떻든, 이 차가 또 얼마나 느리게 가더라도 '빵빵'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졸업생으로 엉금엉금 달리고 있는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출이 배우 하나하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극의 흐름상 역할의 크고 작음이 다르고, 경중이 또 다를 텐데,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고, 어떤 부분 하나 작게 보이지 않도록 안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부분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물론 오만석 선배를 뵙고 짧게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설흔> 공연은 끝났지만, 언젠가 또 이 극이 재연, 삼연 되기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극작 창작집단 독

연출 오만석

출연 정수진 배윤범 홍승비 정 연 한기장 류기산 차도현 박창욱 권아름 심효민 정지인 정해룡

성수아트홀 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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