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고 변주되는 가장 근원적인 관계에 대해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는 혈연으로 맺어진 세 가족의 형태가 나온다. 아버지와 남매, 어머니와 자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쌍둥이 남매. 세 편의 이야기는 닮은 듯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남매를 비추면서 시작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파더'다. 홀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남매는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나는 몇 번 아버지의 요청으로 돈을 보내기도 했는데 남편 눈치가 보여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얼굴로 운전하던 동생도 아버지 집에 일어난 각종 고장 때문에 지속적으로 돈을 보냈다고 말한다. 현실적이고 선이 명확한 딸과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책임을 더 크게 느끼는 아들의 모습이다.
남매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집을 어지른다. 잘 꾸며진 집을 뒤숭숭하게 만들어 자신의 상황과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이게끔 위장한다. 남매가 도착하고 그런 위장이 잠시 잠깐 걷히는가 싶지만 위장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러그 속 소파 테가 좋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소매 끝에서 진짜 롤렉스 시계가 반짝여도, 아버지는 그것이 별 것 아닌 '가짜'라고 말한다. 진짜를 가짜로 바꾸어 버리는 상황은 이 에피소드 안에 여러 번 더 등장한다. 고물 차를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주고 간 약간의 돈으로 데이트를 나가는데, 멋지게 차려입고 나와 차량 덮개를 걷어내고 윤이 나는 차를 몰고 집을 나선다.
진짜인 척, 가짜인 척 위장하는 아버지의 '약자 코스프레'가 '웃프'기도 하지만, 그런 pretend의 서사만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공간 안에서 세 사람이 여러 번 자리를 이동하며 각자가 앉았던 자리에 위치해 보는데 그런 위치 순환 구조가 좋았다. 아버지가 앉아서 창밖 호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남매 역시 경험하고, 잠시 매일의 아버지처럼 풍경에 빠져드는가 하면 의자와 소파를 옮겨 다니면 다른 입장, 다른 질문을 주고받는다. 이런 식의 위치 변주는 짧은 대화 안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위치를 순환시킨다. 주관적 관점을 상호주관성으로 만드는 마법을 장면으로 완성해 낸 것이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떤 교훈적 메시지로 향한 게 아니라 더 좋았다.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아도, 서로는 각자의 괜찮은 척, 안 괜찮은 척하는 삶을 대충은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을 것이다. 모르고 속기도, 알면서도 속아주기도 하는 묘한 친족관계를 집안의 소도구들을 통해서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더 편의 세 가족은 홀로 사는 엄마와 자매인데, 작가로 성공한 강박적인 엄마와 차담을 나누는 일화가 그려진다. 성공한 작가인 엄마는 명절에도 가족을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 이 가족은 오로지 1년에 1번, 차 먹는 시간만을 지킨다. 이건 엄마가 만든 제도이자 법이다. 엄마는 초자아,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 초자아의 기준을 잘 따르는 첫째 딸과 자유 분방한 둘째 딸이 엄마를 찾아온다.
둘째 딸은 대문을 열어둔 채 현관으로 향하고 첫째 딸은 엄마에게 줄 꽃을 들고 들어오면서도 되돌아가 문을 닫는다. 첫째 딸이 들고 온 꽃은 화병에 꽃아 티테이블에 놓기에는 너무 커서 시야를 가린다. 결국 그 꽃은 옆으로 치워진다. 그 꽃처럼,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온 첫째 딸은 엄마의 자랑이지만 셋 가운데서도 유독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자신이 완성시킨 사회적 성취가 왠지 모르게 스스로의 마음을 실현시킨 느낌은 아니다. 차담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며 2층에 오른 첫째 딸은 화장실에 앉아서 숨을 고른다. 마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수험생처럼.
반면 둘째 딸은 그와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있지도 않은 렉서스가 있다고 허풍을 떨고, 롤렉스 시계와 샤넬 가방을 자랑하는가 하면, 첫째 딸은 엄마가 안 좋아한다고 엄마 책을 건드리지 않는데 둘째 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엄마의 책을 꺼내 들춰본다. 즉흥적이면서 충동적이다. 그런데, 첫째 딸이 자리를 비우자, 사무적이었던 엄마의 표정이 풀어지고 둘째 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청한다. 둘째 딸이 '행성 세 개'이야기를 하며 농담을 던지는데, 그때, 단 한 번, 엄마는 '찐 텐'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의 표정으로 둘째 딸을 바라본다. 여러 권의 작품을 히트시킨 작가로 살아오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는지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명절 때조차도 만나지 않는 관계가 된 것은, 가족으로서 이루는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고 조절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완벽하게 세팅된 티테이블을 만들어 딸들을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에 이 관계를 유지시키려는 의지와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다.
떠나는 와중에도 둘째 딸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엄마 돈을 쓰려한다. 처음엔 방어하지만, 엄마는 속아주는 모습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준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이상한 관계. 실속과 손해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 가능한 모습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 '시스터 브라더'는 경비행기를 타다 세상을 떠난 부모와 살던 집을 찾은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은밀한 거래를 한 후 차에 올라타 부모와 살던 집으로 향하는 남매를 통해 그들의 가족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창공에서 사라진 부모를 그리워하는 시스터의 이름이 '스카이'인 것처럼 우리 삶에서, 가족 안에서 교차하는 아이러니를 여러 겹으로 섞어 놓았다. 보헤미안이었던 부모의 결혼증명서는 위조된 것이지만, 그 결혼 이후 뉴욕에서 탄생한 남매의 출생증명서는 진짜였다. 진짜와 가짜를 은근히 섞어놓은 앞의 두 편의 에피소드와 함께 나란한 결을 유지한다.
세 가족은 모두 같은 듯 다른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데, 서로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그들을 보면 모두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 어떤 동질감,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게 바로 가족의 모양이다. 아롱이, 다롱이로 다른 모습이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가족인 게 너무도 분명한 동일체, 가족.
세 에피소드에는 물을 마시며, 차를 마시며, 커피를 마시며 건네는 건배 대사와 같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해'라는 대사도 반복된다. '파더' 편에서 아버지가 말하는 '사랑해'는 '돈 좀 다오'의 느낌이 강하다. 가족이니 사랑하는 만큼 의무와 책임을 가져다오, 로 느껴진다.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만 남은 모양새지만, '마더' 편에서 '사랑해'는 '이 관계를 잘 유지하자'의 느낌이 강하다. '시스터 브라더' 편의 '사랑해'는 가족끼리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의리와 우정이 담긴 마음의 표현 같다. 어쩌면 그건 부모의 그늘이 사라진 후, 완벽히 부모에서 분리된 각각의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독립된 감정인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슬로우가 걸리는 씬들이 있는데, 그건 난데없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년들이 등장할 때이다. 가족의 의무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물들이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는데, '아이들은 잡초처럼 스케이트 보드를 타지'라는 대사처럼, 차가 다니는 길에, 스케이트 보드에 온몸을 맡긴 채 도로를 내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은 위험천만해 보이기보다 더없이 자유롭고 한계가 없어 보인다.
세 에피소드에는 부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유전적으로 엮인 관계들로만 구성되었다. 그래서 제목을 <가족>이라 하지 않고, 명사로 나열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복되면서 변주되는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가족 관계를 보다 수평적으로 보는 감독의 시선이 좋았다. 내가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등을 떠올릴 때 먼저 튀어 오르는 위계나 강요된 책임, 헌신 같은 것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가족 안에서 책임과 의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착취의 빌미가 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짐 자무시가 바라본 이 세 가족의 형태는 충분히 즐길만했고, 유쾌했다. 물론 이 영화는 가족 서사를 감상하기보다는 감독이 선택하고 배열한 반복과 변주, 변용에 집중해서 보아야 더 즐거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