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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Jan 28. 2022

새로운 교환 가치, 그 탄생 배경 소고(小考)

우리 풍속에 돌잡이란 의식이 있다. 아기가 열두 달을 건강하게 살았다고 자축하는 잔치다. 실, 쌀, 붓, 활, 돈 등을 잔칫상에 펼쳐놓고 먼저 집는 물건으로 아기의 미래에 대해 점쳐보았던 것. 물론 그 부모는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슬쩍 아기 앞에 놓기도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우습게도, 아기는 부모님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기도 한다. 아기가 아이가 되면 어른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너 커서 무엇이 될래? 키가 조금씩 클 때마다 키를 재며, 또 어른들은 묻는다. 네 꿈이 뭐니?     


어른들이 물을 때마다 그동안 들었던 말 중, 제일 좋다고 보이는 단어를 자랑스러운 듯 말한다. 장군, 판사, 과학자, 박사, 선생님, 교수 등을 나도 한 개는 말해본 것 같다. 이 물음은 학교에 들어가도 계속된다. 묻고 답하는 사이, 그 점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느껴지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그 누군가에 의해 내 행동에 대한 믿음이 길러진다. 즉, 이 믿음들이 내 것이 되고, 그 내 것들이 쌓이면서 내 가치는 조금씩 형성된다.     


어쩌면, 가치란 누군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일지 모른다. 누가 먼저 어떤 행동을 했고, 그것이 다음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이 영향들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각각 저마다의 방법으로 기록되어 간다. 이 기록은 필요에 따라 모여지고, 다시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게 된다. 서로 같은 것을 나누어 보관했기에, 내가 보관한 것이 맞기에, 맞는 만큼 그 기록에 따라 행동해야 하기에, 그 기록은 그곳 그 시기마다 힘의 원천이 된다. 힘이 가치가 되는 것이다.     


힘의 원천이 서로 다르기에 충돌하게 마련이다. ‘내 가치가 더 맞다’며 우기는 인간이 삼삼오오 모여 살면서 생겨났던 다툼이다. 이념 분쟁이나 법은 창과 방패처럼 서로 대립해 왔다. 과거, 지역 간 조율을 위해 UN이 생겼지만 이 기구도 교통과 통신 발달로 제 생명을 다한 듯하다. 가치를 논하기에 세상은 실시간으로 조율되어야 하고, 그 즉시 가치 교환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화 위에서, 그 아슬아슬한 시간 끝에서, 현대 첨단과학 문명의 꽃은 언제나 활짝 피어나곤 했다. 지금 이 첨단 시대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며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그 경쟁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들었고 이는 영원히 되풀이 되고 있다. 결국, 계속 변화하는 가치만이 그 살아 움직이는 힘만이 끝까지 존재한다. 그렇다. 사라질 가치는 반드시 빨리 버려야 할 일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내 가치가 더 튼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시간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곳들이 많아질수록 다른 가치를 흡수해 진화하겠지만, 그 세력이 극대화될수록 점점 위험해지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 자신이다. 이즈음 되면, 이제 우리는 가치라는 용어를 순수하게 사용할 수 없다. 부끄럽게도, 그저 인간 욕망이란 단어만 남는다. 그런데 참 우스꽝스럽게도 부끄럽지 않다. 너도나도 다 그러니까. 이렇듯, 우리는 위험한 순간마다 타협하면서 스스로를 존속시켜 온 것이리라.     


21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블록체인이란 이름의 기술 혹은 이론이 나타난 것은 당연한 타협의 수순일는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어떤 이름으로든 새 이론의 등장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 가치란 대등해야 한다는 염원 때문이다. 그동안 존재했던 사람들이 갈구했던 본능이었을 거다. ‘내 가치는 항상 있었다’, ‘서로 비교하지 말자’, ‘그러니 서로 이러저러하다 말하지 말자’ 등등의 말들은 영원한 인간의 꿈이었을 것. 누구든, 내가 대등하다고 느낀 가치를, 그래서 내 행복이 된 것을, 그 어떤 의미와 바꾸겠느냐는 거다.    

 

이러한 대등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마다 가진 습관들이 모여 그 집단의 정서가 된다. 그 정서는 인류 존속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기록물들을 만들었다. 서로 지켜야 할 약속들을 뽑아 모은 기록, 즉 법이다. 법은 시기에 따라 계속 합의되고, 현재 시점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힘이 되었다. 헌법이 있는 곳에 가장 큰 국가 권력이 있었다. 이 기록을 근거로 최고 교환 가치의 화폐도 국가가 발행한다. ‘기록이 곧 힘이다’라는 이 원리가 컴퓨터상의 특별한 숫자에 힘을 실어주었다. 컴퓨터의 기록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변하는 기록만이 합의되어 계속 이전 기록 위에 누적될 뿐이다. 바로 가치의 누적이다. 이 누적은 기록의 진화요 가치의 진화다. 이 진화 과정을 담고 있는 기술,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컴퓨터는 사람이 시킨 것을 해결하고, 그 결과 정해진 답을 기억장치에 기록하고, 이를 프린터나 화면을 통해 출력해 보여 준다. 이제 컴퓨터는 블록체인 원리에 따라 실시간으로 일정한 규칙의 기록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 기록의 힘이 곧 가치가 된 것. 그 가치가 컴퓨터상 숫자로 처음 표시되었는바, 바로 비트코인 숫자다. 그동안 10년 정도 기록이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했다는 신뢰, 이를 바탕으로 몇십 년 아니 그 이상 생기는 기록도 그대로 존재하리라는 신뢰, 이 신뢰가 곧 비트코인 숫자로 또 가치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 자체가 컴퓨터에 기록된 이 비트코인 숫자가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은 필연이리라. 모두 그 숫자를 언제든 내 것으로 만들고, 그 내 것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받을 수 있다. 바로 고성능 컴퓨터인 스마트폰 세상이 이 컴퓨터 숫자를 가치가 교환 가능하도록 해준 것. 바야흐로, 비트코인이 화폐 역할을 하리란 예측은 스마트폰에 의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 함께 사용한다는 것, 서로 그 기록을 알고 있다는 것, 숨기거나 몰래 가져갈 수 없다는 것 등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로 하여금 비트코인 숫자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이리라.     


인류가 교환 가치로 사용한 화폐는 수천 년 나이와 다양한 형태의 역사를 가진다. 여기에 비하면, 비트코인이 교환 가치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태아와 같다. 어쩌면, 이 아기가 태어나 제 몫을 할 즈음이면, 인간 흉내를 내는 아바타나 로봇 등도 저마다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그들이 비트코인을 더 애용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 입맛에 맞는 다른 비트코인을 만들어 사용할지 더욱 모른다.     


혹여, 이제 갓 태어난 비트코인에게 ‘돌잡이’를 시킨다면 그 비트코인은 무엇을 선택할까? 우리는 그 앞에 무엇을 놓아야 할까? 나는 한 줌의 물과 바람과 흙을 놓고 싶다. 무엇을 선택해도 나는 그와 함께 놀 수 있을 테니.     


<후기>     


인간은 수많은 기록을 서로 만든다. 그 기록은 누가 언제든 볼 수 있는 법이 되었다. 그 법을 바탕으로 국가가 만들어졌고, 그 국가는 교환가치 수단으로 화폐를 만들었다.     


인간 욕구가 인구수만큼 팽창하면서, 화폐량을 기하급수로 더욱 팽창하였다. 인간은 더 편리한 수단으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컴퓨터에 기록하고 보관하고 전달하고. 그러나 그 기록들은 서로 틀린 경우가 생겼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간이 기록하는 것들을 언제 보아도 같은 내용으로 유지해주었다. 과거 10년 동안 투명하고 불변한 기록이었다. 향후, 10년 100년이 지나도 그 기록은 불변한다. 블록체인 기록의 힘이 암호화폐를 만들었다.     


그 첫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사고 팔린다. 또 그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저장가치 뿐만 아니라 교환가치 수단이 된 것. 곧 인간은 암호화폐를 화폐 대신 사용하게 된다. 또 기계가 암호화폐를 더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 역사는 어떤 모양이든 흘러간다. 비트코인이나 아바타나 로봇이 판치든,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나타나든, 그냥 인간 역사의 한 모습들일 뿐이다. 다음 세상에 어떤 이론이나 기술이 나올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처럼 그저 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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