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꾸 '편'을 가를까?

조직 내 파벌과 인간 본능의 심리학

by 해결사

점심 메뉴가 가른 운명의 데스매치, "너 찍먹이야?"

제 첫 직장 생활에서 겪었던 기묘한 경험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어느 날 점심, 팀원들이 탕수육을 먹으러 갔습니다. 소스를 붓느냐 찍느냐로 시작된 농담 섞인 논쟁은 생각보다 길어졌죠.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이후였습니다.

'찍먹파'였던 상사와 사원인 저는 그날 오후 업무 협조가 유독 매끄러웠습니다. 반면 소스를 부어버린 과장님과는 묘한 거리감이 생겼죠. 고작 탕수육 소스 하나에 '우리'와 '저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겁니다. 우습지만, 이게 바로 인간의 본능적인 편 나누기의 시작입니다.


뇌가 시키는 0.1초의 생존 전략, "내 편인가 적인가"

우리가 편을 나누는 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낯선 존재'는 곧 '잠재적 위협'이었습니다. 숲속에서 만난 상대가 내 부족인지 아닌지를 0.1초 만에 판단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죠.

현대 사회에서 이 본능은 '내집단 편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가장 고전적인 편 나누기 방식입니다.

업무 성향: "우리 기획팀은 꼼꼼한데, 개발팀은 너무 딱딱해."

사소한 취향: MBTI, 지지 정당, 심지어 사용하는 스마트폰 브랜드까지.


우리는 아주 작은 공통점만 발견해도 뇌에서 안정감을 주는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반대로 '남의 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상대의 실수는 크게 보이고 성과는 운으로 치부하게 되죠.



'뒷담화'라는 위험한 접착제, "부장님 왜 저러셔?"

집단의 결속력을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다지는 방법이 뭔지 아시나요? 안타깝게도 그것은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소위 '빌런'으로 낙인찍힌 인물이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며 단톡방이 뜨거워질 때, 우리는 소속감이라는 달콤한 도파민에 취합니다. "우리는 저 사람과는 달라"라는 확인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접착제는 매우 위험합니다. 적이 사라지면 그 화살은 다시 내부의 누군가에게 향하게 되니까요.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한 끗 차이, "선 긋기 대신 원 그리기"

인간인 이상 편 나누기를 완전히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관계의 무기로 만드는 법은 있습니다.


메타 인지 발동: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팀 간의 벽이 느껴질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지금 생존 본능 때문에 저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건가?"

교집합의 확장: 저 사람은 '까칠한 타 부서 대리'이기도 하지만, 퇴근 후엔 나와 같은 '골프 초보'일 수도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다각화하면 적대감이 줄어듭니다.

선의의 활용: "저 팀은 적이야"라고 선을 긋기보다, "우리 팀은 이걸 더 잘해"라는 긍정적 자부심으로 에너지를 돌려보세요. 배척이 아닌 경쟁이 조직을 살립니다.


본능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오기

결국 편 나누기는 우리가 나약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불안하니 누군가와 뭉쳐서 방어막을 치려는 심리죠. 하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굳이 높은 성벽을 쌓지 않습니다.

내 편이 아니라고 해서 적은 아닙니다. 오늘부터는 누군가를 만날 때 '어느 쪽 사람인가'를 묻기 전에, '나와 어떤 접점이 있는가'를 먼저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선을 그어 상대를 가두는 대신, 더 큰 원을 그려 상대를 포함하는 순간 당신의 세계는 몰라보게 넓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본능대로만 산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겠지만, 그 본능을 관찰하고 조절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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