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위원회X브런치 스토리
밤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두시를 가르켰다.
천장에는 바람이 지나가는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익숙한 문구가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적었던 책의 변주 같았다.
기억 속의 작은 조각들이 저절로 손끝으로 흘러들어왔다.
그건 내가 만든 무언가와 닮아 있었다.
링크도 없고, 출처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걸 ‘자료’라고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컨텐츠’라고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트북을 덮고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나는 서서히 지워졌다.
창작자는,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자주 무너진다.
낮에는 감정을 끌어다 문장을 만들고
밤에는 불안과 싸운다.
내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고,
또한 누구에게도 훔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바람은 모순처럼 찢긴다.
"글이 너무 좋아서 그냥 퍼왔어요"
"원작자를 못 찾겠더라고요"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 이해시키는 방법을 잃는다.
존재를 증명하라는 말에는 뒤쳐지고,
도용은 '사소한 일' 이라는 말에 숨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한 줄의 문장 뒤에는
한 밤의 절망과 부서진 손목, 식어버린 차와 수십 번의 삭제가 있다는 것을.
한 장의 일러스트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터온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을 묵인하는 순간, 창작자는 고통 속으로 떨어진다.
그의 권리는 지워지고, 그의 이름은 삭제된 메타데이터처럼 흩어진다.
나는 다른 작가의 고통을 본 적이 있다.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에, 친한 작가의 문장이 있었다.
글자체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내가 봐도 그 작가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아무의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배경화면으로 저장했고 누군가는 그걸 인쇄해서 팔았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그 글은 누구의 것이었는지.
내 안에서 무언가가 꺽이는 중이다.
침묵은 내게 익숙했고, 분노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고, 슬픔은 내게 이미 충분히 겪은 감정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 나의 문장을 닫기 시작했다.
비공개 폴더 속, 출처 없는 시간 속,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말들이 쌓여갔다.
아무도 훔치지 않도록, 아무도 나를 모르도록
"좋으면 그만, 누가 만들었든 뭐가 중요해?"
그 질문은 칼날 이었다.
어떤 감정은 고통보다 더 조용하게 사람을 죽이기에.
존중받지 못함, 무시 당함, 훔쳐진 의미
그것은 존재를 지우는 행위이다.
기억과 이름과 존재를 담을 수 있다면 지우지는 않을 수 있다.
나는 요즘 버릇처럼 이름을 찾는다.
글을 적은 사람은 누구인지
음악의 멜로디에 숨겨진 작곡가는 누구인지
그렇게 이름을 붙이면 사람이 살아난다.
법의 문제가 아닌 기억의 윤리로.
당신이 이름을 지우는 동안,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내기 어렵다.
어떤 이는 다시 시작할 수 없고, 어떤 이는 무너진다.
문명의 균열이다.
모든 창작에는 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한다
"이건 내 것이고, 내가 만들었고,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