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2025년 1월 초의 어느 날,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던 아침이었다. 부산 북구의 한 골목길에서 사고가 났다. 할머니는 평소처럼 가벼운 운동 삼아 동네를 걷고 계셨다.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집 근처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던 중이었다. 그 시간대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이른 시간에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종종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예외적인 일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채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남성이 역주행으로 골목을 질주했고, 바로 그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할머니를 덮쳤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는 할머니가 머리를 크게 다친 상태였으며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전했다. CT 촬영 결과, 외상성 뇌출혈이 심각했고, 두개골이 일부 함몰된 상황이었다. 가족들 동의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긴급 수술이 이루어졌으나, 의료진은 회복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지 못한 설명을 반복했다. 뇌 기능의 상당 부분이 손상되었고, 깨어날 수 있을지, 혹은 어떤 상태로 회복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대학 일정과 그 해 봄에 예정된 중요한 시험들 때문에 발이 묶여 있었다. 더구나 4월 말부터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험을 치러야 했기에 출국 준비까지 겹쳐 부산에 자주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집중 치료를 받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나는 중간중간 어머니로부터 간접적인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통화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메말라 갔다. 강하게 말하려 하지만 그 속에서 자꾸 무너지는 감정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반응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은, 말로 듣는 것만으로도 참담했다.
5월 말,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나는 곧장 부산으로 내려갔다. 처음으로 요양병원을 찾은 날은 흐리고 무더운 날씨였다.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솟구쳤다. 문득 ‘아직 살아 계실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손에 쥔 핸드폰을 몇 번이고 쥐었다 놓았다. 병원에 도착해 중환자 병동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렀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분이 과연 내가 알던 할머니가 맞을까, 몇 초간 믿을 수 없었다. 얼굴 윤곽은 그대로였지만, 피부는 창백했고 눈은 감겨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머리 한쪽이 움푹 파인 채 있었다는 점이었다. 의료진은 뇌압 조절을 위한 두개골 절제 수술이 진행되었으며, 이후로도 회복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도 나는 도무지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은 이미 장기간의 무기력 상태로 인해 기능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팔과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영양 공급은 코로 삽입된 튜브를 통해 이루어졌고, 호흡도 기계에 의존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생명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날 병실에서는 다른 침대에서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할머니의 침대 앞에 계시던 어르신이 아침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침대는 텅 비어 있었고, 간호사가 흰 시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차갑고 조용한 병동 안에서, 할머니의 상태는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주변의 생명이 하나씩 꺼져가는 그 공간에서, 나는 할머니도 언젠가 그렇게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깊이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셨지만, 눈가에 붉은 기운이 퍼져 있었다. “의식이 없어도 다 들린대. 할머니한테 말 좀 해 봐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너무 오랜만에 뵙는 것이었고,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따뜻하고 활기찼던 할머니와 너무도 달랐다. 겨우 입을 열어 “할머니, 나 왔어요. 나, 프랑스에서 시험 보고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미동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 잘했어.”라고 중얼거렸다.
하루가 끝나고 병원을 나오는 길, 하늘은 어두워졌고 공기는 더 퍽퍽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창 밖 풍경은 흐릿하게 지나갔고, 마음속에는 낯선 공허함이 가득 찼다. 할머니는 언제부터 저렇게 무너져 갔던 것일까.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후회와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왔고, 그 감정은 나를 더욱 무겁게 눌렀다.
그날 밤, 부산의 숙소에서 혼자 잠을 청하려 했지만 좀처럼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누워만 있자니 병실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되풀이됐다. 기계음, 희미한 소독약 냄새, 할머니의 이마, 그리고 중환자실의 그 공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할머니의 손을 다시 떠올렸다. 언젠가는 그 손을 잡고 산책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것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깨달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아무런 예고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할머니의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다. 이제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보험이 없다..(필수 보험을 제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