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샤로잡다] MZ세대가 쏘아 올린 성과급 논란, MZ가 말하는 공정은 무엇인가? | 서울대학교 신재용 교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의 단점과 불평등 문제의 해답#월간커넥트 EP.1 | tvN 210107 방송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워낙 유명한 작가의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내가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기까지 출간되고 2년이나 걸렸다. '공정'에 대한 관심을 책으로까지 뻗는데 최소 2년이 걸렸다는 뜻이다. 책의 표지를 보면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있는데, 그래서 마치 '공정이란 무엇인가'의 다른 제목으로서 '공정'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책인 줄 알았다. 책의 서두를 읽다가 표지를 다시 보니,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보이지 않던 소제목이 보였다.
"아! 공정이 아니라 능력주의의 공정성을 다루는 책이구나."
저자의 주장은 명료하다.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감을 준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그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뤘다고 착각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그 실패가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생각해 자책하며 타인의 질타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으로 정해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전제다. 이를 기회로 능력주의에 대한 흩뿌려진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능력주의에 회의적임을 밝힌다.
능력주의를 크게 보면 '결과주의'도 내포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에서의 노력이 부정되는 결과주의는,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책임이 된다는 면에서 능력주의와 의미가 상통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덕인 능력주의에 반해, 결과주의에서는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의 노력은 고려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했던 수많은 나의 노력들.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로 인해 나의 노력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부정이었다.
"그건 네가 열심히 안 한 거야."
"이게 최선을 다 한 거야?"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까지 나의 노력을 부정하면 나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차라리 뛰어나지 못한 나의 능력을 탓하지, 절대 노력을 탓하지는 않는다.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오정세 님이 남긴 수상소감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은 나에게,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감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실은 부끄럽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인가. 이룬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얻은, 적지 않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성취정도로 표현하고자 한다. 39: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대학. 내가 제친 38명보다 더 노력을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절반 이상 떨어지는 신체검사에서 어떤 노력도 없이 붙었고, 연습도 거의 안 했는데 체력검정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필기시험?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은 맞지만,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느끼는 것은,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놀이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공부 대신 노는 것은 택한 대다수의 10대 사이에서, 내가 머리가 뛰어나지 않음에도 공부를 택해 성적이 나쁘지 않게 나왔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한 달을 준비해서 2급을 받았는데, 일주일 공부해 거의 만점을 맞는 그때의 친구들을 보면 그때 공부를 택한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책 또한, 나의 선배가 같은 내용으로 출판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나의 후배는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써도, 나의 책이 있기에 그의 글은 출판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까 한다. 나에게는 운이 좋은 것이지만, 먼 후배에게는 내가 불행을 준 것이다. 운이나 환경적인 요소 없이 온전히 내가 이룬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렇게 성공하는 방법이 있다니. 예를 들어, 부모님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나오면, 재외국민 전형으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입학한다던가.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긴 하다. 또한, 교육의 불균형으로 나의 고향에서는 진짜 열심히 해야 인서울 대학교를 가는데, 서울에서는 부모님의 커리큘럼대로 대치동 3년만 다니면 인서울 대학교는 쉽게 가는 것 같다.
재능의 배분이 도덕적 관점에서 자의적이라는 롤스의 주장에 근거한 '행운 평등주의' 철학자들은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종류의 개인적 불운에 보상해야 한다.(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거나, 장애인이거나, 재능이 부족하거나, 살다가 사고 또는 재난을 겪었거나 등등)'고 한다. 이들은 능력과 자격의 정확한 판단을 요구한다. 개인에게 주어져야 할 보상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에만 한정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들은 공적 부조(복지나 의료보험 등등)를 하기 전에 대상자인 불우한 사람들이 불운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잘못된 선택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책결정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누가 피치 못할 희생자인지, 따라서 구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아니면 스스로 빈곤의 책임자이며 따라서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 가려낼 필요성을 요구한다.
행운 평등주의는 노력과 선택에 따른 불평등을 옹호한다. 이는 자유시장 자유주의와의 겹치는 점을 부각시켜 준다. 둘 다 개인 책임을 강조하며 불우한 사람을 도울 사회의 의무는 해당자가 스스로의 실수가 없는지 따져야 하는 조건부라고 여긴다. 행운 평등주의자는 그 나름대로 복지국가를 자유시장주의에서 지키려 했다. "반평등주의의 무기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즉 선택과 책임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말이다. 이는 자유시장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사이의 차이를 좁혔으며, 개인의 선택이 상황의 산물인가 그 자신의 의지인가 하는 양자 논쟁에서 견해 차이를 줄였다. (233p~239p)
샌델은 행운 평등주의를 비판하지만, 나의 철학관념은 행운 평등주의에 가깝다. 자의적이지 않은 불평등에는 충분한 복지를 해줘야 하지만, 그 불평등이 본인의 선택의 결과라면 나는 그 복지에 쉽사리 찬성하지 못한다. 그냥 인생은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며, 노력한 자들이 노력하지 않은 자들보다 보상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나 또한 나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며 살아왔으며, 그런 책임은 응당했다고 생각한다. 샌델이 "행운 평등주의는 어려운 시민들을 심문하고 그들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면 빈곤을 피할 수 있었는지 가려낼 권한을 국가에 부여한다. 이런 '책임의 분해 관찰'은 민주 시민이 서로에게 져야 할 책임을 받아들이기에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실패한 사람에게(그의 선택의 결과이든 아니든) 책임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인류애적으로 잔혹하다. 예를 들어, 생활지원금을 받으려면 본인이 누구보다 가난함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증언을 하는 것의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해 주는 사람이 꽤 있는데 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 이유를 밝히는 비참함에 대해 공감해 주는 사람이 적은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 생기기를 소망한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기회의 평등'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교육을 받고, 같은 학원을 다니고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어떤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 관련된 직업을 꿈꾸지 못한 것만큼 슬픈 것이 없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목의 스포츠선수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저 사람은 저 운동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이다. 스케이트, 사격, 양궁, 컬링, 체조, 펜싱, 승마 등... 우스갯소리로 내가 알고 보면 이 중 하나에 특출 난 재능이 있어 어렸을 때 접했다면 나는 지금 국가대표이지 않을까. 많은 아이들의 교육 기회의 평등으로 자신의 재능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샌델은 성공한 자들에게 '겸손'을 강조한다면,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당신이 50년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영어 실력으로 일타 영어강사가 됐을 것이고, 지금의 코딩 실력으로 스티브 잡스가 됐을 것이고, 지금의 학위로 취업을 보장받았을 것이고, 지금의 월급으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의 실패로도 재기를 약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불운한 탓이지, 당신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책하지 말라.
p.s) 스크롤을 다시 올린 적 없음. 정리되지 않은 말, 모순되는 말 난무.
*읽어볼 책 :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 공정한 나를 지켜줄 7가지 정의론 (김범수, 아카넷)
나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내신, 동명이인 교수님의 저서. 당시에는 내가 이 분의 책을 읽을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도서관에 이 책이 없음에 아쉬워한다. 사실 '공정하다는 착각'보다는, 이 책이 더 내가 읽고 싶은 내용이 더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