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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더밍 Jun 11. 2020

오전의 일과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8시쯤 눈을 떠 짝꿍의 이름을 부른다. 내 이름을 메아리처럼 부르며 달려오는 짝꿍은 옆자리에 한참을 누워 있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팔베개를 한채로 짝꿍의 귓볼을 한참 만지다보면 난잡했던 꿈의 기운은 사라지고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기운이 생겨난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내 생에 다신 없을 행복한 순간이야. 분명.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만지자.


  짝꿍이 이제 일어나고 싶다고 열댓번은 꿈틀거리고 나서야 나는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만지고 있어도 만지고 싶은 지금이 얼마나 애달프고 그리운지 지금이 행복한 사람은 알겠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다시 생각하며 웃는다.


  일어나 침구정리를 시작으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거실로 나가 향을 피운다. 집안의 초록이들에게 인사해주고 봉긋 올라와 색도 선명한 튤립에게는 고주파 소리를 내며 인사한다. 꺄악. 꺄악. 이내 칼칼해진 목에 침을 삼키며 물을 끓이고 전날 설거지한 그릇들을 정리한다. 예쁜 잔에 물을 따라 자리에 앉아 하나마나 한 스트레칭을 하며 호로록 뜨거운 물을 마신다. 뭔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면 라디오 클래식 채널을 튼다. 완벽하게 따뜻한 아침이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그냥, 멍하니 지금과 여기를 마주한다. 따뜻한 물이 내 목구멍을 지나는 감각을 느끼고 들려오는 청명한 소리들도 감상한다. 서른해가 지나서야 겨우 마주한 여유로운 시간들을 앞에 두고서 최대한 느긋하게 즐겨보리라 다시 다짐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자연스레 깨우면 한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다음은 리프레쉬마인드의 온라인 명상 강의를 듣는다.


  도인님(강사)의하면 명상이란 '마음의 특징을 배우는 기술' 인데 크게 집중명상과 통찰명상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집중명상은 호흡감각에 집중해 평온감을 느껴 정신적으로 휴식하는 상태를 개발하는 것이고 통찰명상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를 관찰하여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명상은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처럼 마음을 단련하여 삶의 사건들을 '잘'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일인 것이다. 살아가며 아주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특하다며 칭찬한다. 동시에 내가 알게 된 것들로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옭아매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오전의 일과를 마친다.


불쑥 불안이 튀어오르는 순간들이 잦다. 통장 잔고가 얼마 남았지, 계속 이렇게 별일없이 지내도 되는걸까, 다른 시험 준비를 해볼까, 짝꿍은 어떡하지.

  이렇게 불안으로 온 마음과 몸이 달뜨면 지금 말고 미래를, 여기 말고 저 너머를 생각하는 내 삶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통장잔고는 지금 당장 내가 늘릴 수 없고 일단 올해는 푹 쉬기로 마음 먹었으니 지금은 쉬는데 집중하는 걸로. 짝꿍은 자기의 몫을 알아서 할테니 나의 염려 대신 믿음으로 침묵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옛 습관들이 나를 반기면 그 때 마다 알아차리고 '생각이 났구나' 하고 또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습관은 정말 무섭구나, 하고 또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올 봄에는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그렇게 올 봄을 만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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