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갑자기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수리부터 스미는 시원한 가을바람과 코에서 폐까지 뻥 뚫리는 차갑고 무거운 겨울 공기, 시리던 발목부터 따뜻해지는 봄의 햇살, 꽉 막힌 도로처럼 숨막히지만 진하고 선명한 여름날의 축축한 공기가 어느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부터 꽃을 만나기 시작했다.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다. 무채색같은 세상에 누군가 보내준 선물 같고 그 색이며 형태가 신기하고 신비롭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들의 다양함과 소재들의 푸릇함은 싱그럽게 내게 인사하고, 익어가는 열매들의 모습은 성숙한 어른 같아서 내 마음 위로 미끄러져 위로가 되었다.
열흘에 한 번 꼴로 꽃집을 간다. 나의 한 때를 함께 하고 흩어져 사라질 아름다움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한 때 간직하고자 몸을 일으켜 꽃집에 간다. 수많은 번거로움을 뒤로 하고 겨우 출발한 나는 지나온 아름다움들이 떠올라 오늘은 어떤 꽃이 있을까 하고 오늘의 하루를 기대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꽃은 내게 아주 중요한 무엇이 된다. 삶에 설렘을 주고 그 설렘에 기댈 수 있으니까. 그걸로 오늘 하루는 이미 충분해진다.
꽃집 사장님과의 대화 또한 빠질 수 없는 취미 생활 중 하나다. 지난번에 가져갔던 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사담을 늘어놓고 오늘의 꽃과 날씨 등 소소한 이야기들과 각자의 요즘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일로 엮이지 않은(물론 사장님에게는 일이겠지만) 것들에 대해 주절거리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새로운 생기가 차올랐음을 알 수 있다. 별 것 아닌 말과 깊지 않은 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괜찮아진다. 이상한 일이다. 한없이 늘어지는 생의 우울을 뒤로한 채 타인의 가벼운 격려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힘이 생긴다.
이어지는 즐거운 일은 꽃을 관리하는 일이다. 어울리는 화병을 찾아 이리저리 모양새를 달리 해보며 내 마음에 드는 아름다움을 찾아 시간과 품을 들인다. 이것은 돈을 버는 행위도 아니고 효율성을 찾아 경쟁하는 시간도 아니다. 그냥 나의 여가 생활이다. 전문적이지 않아도 삐뚤어도 괜찮다. 그냥 그대로도 이미 충분히 즐겁다.
꽃은 알 수가 없어서 비실거렸던 녀석이 빵빵하게 물이 올라 건강하게 피어나기도 하고 영원이 싱싱할 것 같던 녀석이 다음 날 고개를 떨군채로 맥없이 축 늘어져 있기도 한다. 쓰레기통으로 보낼까 하다 아쉬워 줄기를 짧게 잘라 물 위로 띄워두면 때로 그 다음날 다시 빵긋하고 피어나기도 한다. 마치 한 세상이 담긴 것 마냥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으면 화가 많이 나는데 어쩐지 꽃은 그렇지 않다. 다시 모르겠어도 그저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본다. 내 주변이 환해지는 살아가는 내 삶의 낙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에게 인사하며 새로운 물을 준다. 상한 줄기는 잘라내고 마른 잎이나 아름다움을 다 보인 꽃들은 정리한다. 끝을 아는 한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매일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깊이 관여하는 무언가가 아름답게 피고 지는것을 보는것은 그 자체로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은 아차, 하면 지나가는 빠른 시간이라 자꾸만 나를 순간의 영원에 머물고 싶게 한다. 삶이 주는 선물의 순간. 그 푸르른 시간. 나의 취미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