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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더밍 Aug 05. 2020

빚진 마음

동생은 어릴 적부터 깔끔했다. 내 기준으로는 아픈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느 날 청소를 마치고 뿌듯해하는 동생이 얄미웠던 나는 깨끗해진 책상 위로 올라가 물건들을 마구 어지럽혔는데, 동생이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우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난감을 정리하는 것보다 가지고 노는 게 훨씬 중요한데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극성인 걸까.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동생이 남자임에도 성실하고 청소도 잘 하는데, 나는 첫째에 여자인데도 말을 안 듣고 지저분하다며 나에 대한 불만이 많으셨다. 할머니가 괴롭히는 나를 위해서라도 정리정돈을 적당히 하면 좋으련만 내 바람과 달리 동생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하는 아이였고 가끔은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었다.     


워낙 청개구리였던 나는 할머니가 혼을 내면 낼수록, 동생이 정리정돈을 잘하면 잘할수록 정확히 반대로 정리정돈을 전혀 하지 않는 태도를 굳혔다. 사실 내가 커가면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 할머니와 동생과 내가 방을 같이 써야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정리정돈을 할 수 없는 상황도 한 몫 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나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운 좋게 18평형 아파트에 혼자 살 수 있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 공간을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사회생활로 지친 심신을 끌고 집으로 들어가면 온전한 나의 공간이,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깔끔한 사람이 된 것은.     


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심어두고 나의 선택으로 벽지와 타일을 고르고 취향에 맞는 가구를 배치했다. 나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공간 안에서 물건을 정리정돈하는 일은 나의 내면을 윤기나게 닦는 일과 같았다. 내 집은 무엇 하나 타인의 의지가 침범하지 않은 오로지 나만의 세계였다. 집 밖은 이런저런 일과 사람으로 인해 내가 휘청거리게 되는데 내 집에서만큼은 나의 노력에 따라 마음 상태가 정비례로 안정되는 생활이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어릴 적 동생이 정리정돈을 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를. 동생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의 공간을 알뜰히 가꾸어 자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말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애써 치워놓은 것들을 훼방 놓기 바빴으니 동생은 이 원통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훌쩍 커버린 나는 어린 시절의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인간은 모델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어쩌면 나만의 공간이 생겼어도 동생의 깔끔했던 모습이 나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면 나는 공간을 운용하는 기쁨에 대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나의 공간을 살뜰히 가꾸는 일의 영향력이 큰 요즘, 동생의 존재는 큰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동생에게 많은 것들을 빌렸다. 이 빚진 것들은 나에게 빛나는 마음으로 진화하여 내 삶을 일군다. 소중한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한 밤이다. 동생에게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다. 고마워, 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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