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갈>을 봤다
아미르 칸의 생일에 맞춰 들려온 <당갈>의 한국 개봉 소식에 가슴이 설레었다. 이 영화를 혼자 본다는 건 정말 짜증 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인도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를 혼자 보고, 벅찬 마음으로 당갈의 온갖 트리비아를 혼자 읽으며 누군가와 함께 당갈당갈을 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왔다. 그래서 한국 개봉 이후 트위터에서 넘실대는 당갈당갈의 외침이 너무 기쁘기만 하면서도, <당갈>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숟가락을 얹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자라 현재 인도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보는 <당갈>은 어떻게 읽히는지, 짧은 생각들을 길게 적어보고자 한다.
<당갈>은 현실에 꿈을 접고 은퇴한 레슬러인 마하비르 포갓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레슬링에 대한 못다 한 사랑을 풀기 위해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기대처럼 아들이 태어났더라면 그는 기저귀를 찬 아기 시절부터 뼛속까지 레슬러로 키워 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딸 넷을 내려주었다. 자신을 대신해 금메달을 목에 걸 아들을 원했던 마하비르에게 그것은 재앙이다. 그러나 어느 날 또래 친구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두 딸, 기타와 바비타를 보고 마하비르는 희망과 재능의 새싹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는 마을의 손가락질을 무시하며 두 딸을 레슬러로 키워낸다.
<당갈>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아미르 칸은 <세 얼간이>, <지상의 별처럼>에서 인도의 무분별한 교육열을 비판했지만, 아이들을 무자비한 체력 훈련으로 내모는 마하비르의 모습은 인도 부모들의 교육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문 문과대, 공과대, 의과대에 들어가 사회의 높은 자리에 서야 한다.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더라도(일하더라도) 언젠가는 인도에 돌아와야 한다. 이 사회를 더 발전시켜야 하니까, 이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만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끝없이 학력만능주의와 민족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매년 입시철이면 들려오는 자살 소식이나 인도의 학원도시 코타 Kota의 모습을 보면 한국 못지않은, 어쩌면 더 하다면 더 한 인도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이 거대한 학력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스포츠란 당연하게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스포츠 선수가 되어 성공할 수 없으니까’ 스포츠에 대한 충분한 지원도, 정책도 없다(고 나는 느꼈다. 물론 이 문장에서 크리켓은 제외이다). 인도가 역대 올림픽(1900~)에서 딴 메달의 수는 총 28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2개에 불과했다. 인도 아대륙에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인도의 국민 스포츠 크리켓이 올림픽에 없어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인도인들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덜 해서도 아닐 것이다. 충분한 지원도, 정책도 없는 이유는 크리켓 이외에 인기 있는 스포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켓 외의 스포츠가 인기를 얻는 법, 그건 스포츠 스타의 등장뿐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인도가 딴 두 개의 메달은 모두 여성 선수들로부터였다. 배드민턴 여자 싱글 은메달을 딴 피브이 신두P. V. Sindhu, 그리고 레슬링에서 동메달을 딴 삭시 말릭Sakshi Malik. 삭시는 <당갈>의 주인공들과 같은 하리아나 주 출신이다. 그녀의 스토리 역시 <당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범한 버스 운전사이자 지역의 건강 클리닉 관리자였던 부모는 ‘왜 딸에게 레슬링을 시키냐’는 말을 들며 그녀를 키웠다. <당갈>은 공부만이 전부라고 믿는 사회 속에서, 여자들은 시집을 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을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여자라는 존재가 어떻게 취급받는지에 대해서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마하비르는 딸들을 레슬링의 세계로 던진다. <당갈>에서는 그것이 오로지 딸들의 재능을 발견한 마하비르의 결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배경에 또 다른 ‘위대한’ 아버지와 여성 선수들이 있었다.
마하비르의 코치였던 레슬러 찬드기 람Chandgi Ram은 1997년 여자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이 된 때부터 인도에 여자 레슬링을 키워낸 선구자이다. 자신의 두 딸들을 레슬러로 키우면서 자신의 훈련센터에서 인도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레슬링을 가르친다. 이런 그의 노력은 훈련센터 안팎으로 영향을 미치며 마하비르의 시선 역시 바꿔 놓는다. “언젠가는 딸들을 위해한 모든 것들이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의 적수를 마주하는 것처럼 어려움을 상대하고 비난에는 귀머거리가 되어라.” 마하비르는 자신의 딸들을 직접 키워냈지만, 찬드기 람과 그의 딸들은 많은 여자 레슬러들을 키워내는데 앞장섰다.
기타와 바비타는 그들의 시작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으로 기억한다.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역도를 시작한 카르남 말레스와리Karnam Malleswari가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인도의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녀가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을 본 마하비르는 그에게 네 명의 딸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딸들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내기로 결정한다. “그녀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면, 내 딸들이라고 왜 못 따겠는가.”
여성 스포츠 스타, 그것도 ‘역도’나 ‘레슬링’ 같은, 통상적으로 여성답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분야에서의 성공한 스타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그들이, 그녀의 부모가 미디어에서 하는 말들이 모든 인도인에게 전해지고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카르남 말레스와리의 금메달이 마하비르에게 와 닿았듯, 기타의 커먼웰스 금메달과 <당갈> 영화가, 삭시의 레슬링과 신두의 배드민턴이 또 다른 스포츠 영재를 키워내는 부모를 만들 것이다. 영화에서는 비록 마하비르에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스포츠의 영웅들이 지워졌지만, 딸들을 키워낸 마하비르의 신념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뛰어난 성적, 좋은 학교 입학, 좋은 직장을 갖는 것만이 성공의 길이라 생각하는 사회 속에서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 두려워하지 않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 그것이 <당갈>의 레슬링이, 마하비르가, 기타가 이기는 방법이다. 나는 거기서 <당갈>의 의미를 찾는다. 정확히는 <당갈>이 조명한 여성 스포츠 스타의 의미를 찾는다. 상대와 맞서 싸우고, 남들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런 굳건한 마음이 나라를 들어 올리는 한 여성을 만들어낸다.
아미르 칸이 그런 신념을 마하비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것은 이 영화가 그 누구보다 그런 여성을 지원하는 부모들에게 와 닿기를 바라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인도 사회에 팽배한 조혼과 신부 지참금, 그에 따른 여아 낙태와 여성차별 속에서 나의 딸을 아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2017년 <당갈> 감독인 니티쉬 티와리Nitish Tiwari와 함께 찍은 Star Plus 채널의 #Nayi Soch 광고는 이런 메시지를 더욱 확고히 보여준다.
이 광고의 마지막 멘트는 이렇다. “성공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별 짓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Success doesn’t differentiate between boy and girl. It’s the thinking that matters.”
나는 그래서 <당갈>이 지금 인도 사회에 유효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라고 믿는다. 비록 현실의 인물들이 지워졌지만, 고집스러운 아버지 마하비르를 조명함으로써 또 다른 마하비르에게, 아들을 낳지 못해 안타까워만 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이 소비되는 방식인 외모 평가와 ‘꽃’ 같은 수식어와 거리가 먼, 괴성과 근육을 터트리며 자신만의 레슬링을 묵묵히 해내는 기타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마하비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기타가 걸어야 했을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인도 여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치러내야 할 인생 레슬링 속에서 포갓 가족이 전하는 ‘맞서 싸움’의 메시지가 충분한 임파워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당갈>의 기타와 비슷한 한국 스포츠 스타를 생각하다 박세리를 떠올렸다. (현실의 기타는 결승전에서 3판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지만) 영화에서 보인 것과 같은 ‘명승부’가 한국에 있다면 박세리의 맨발 샷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속 기타와 바비타가 겪은 지옥훈련은 박세리도 충분히 겪어왔고. 한국의 골프 천재 박인비가 ‘ 세리 키즈’로 불리며 박세리를 보고 꿈을 키운 것 역시 그렇다. 2010년 커먼웰스 게임과 <당갈>을 보며 자란 ‘기타 키즈’가 인도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기타와 바비타와 삭시와 카르남과 신두를 보며, (다음번 글에서 이야기할) Ladies First의 디피카 쿠마리Deepika Kumari를 보며 자란 다음 세대의 인도 여성은 분명 또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것도 꽤나 빠르게(Shooon te sha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