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유형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2023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가 지난 주말에 개막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을 게 뻔하기 때문에 이틀을 참았다가 월요일이 되자마자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주말에 꽃구경도 안 가고 뭘 했는지 오늘도 사람이 많았다. 입구와 가까운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기 때문에 조금 멀리 주차를 하고 걸어가야 했지만 그 정도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넓게 펼쳐진 정원에 가득 핀 꽃을 본 순간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부터 켰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반겨주는 순천만 국가정원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배웠어야 했다. 사진은 '무엇'을 찍었는지만 알 수 있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어차피 카메라는 절대 사람의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믿었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본 그 느낌 그대로를 담아내지 못하는 내 똥손이 원망스러웠다. 어디서 어떻게 찍어도 실제로 본 감동의 반의 반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눈앞에 이렇게 예쁜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나를 유혹하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서도 찍어보고 저기서도 찍어보다가 사진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사진을 찍은 기억 말고는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큰맘 먹고 카메라를 끄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진을 안 찍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혼자였지만 대부분 일행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있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히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면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사람들의 성격이 다 다르듯 사진을 찍는 유형도 다 달랐다.
1. 다정한 중년 부부 유형
소녀 같은 분위기의 50대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꽃 사이에 쭈그려 앉아 수줍게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게 조금 부끄러운지 남편에게 "아유, 얼른 찍어줘~" 하고 애교를 가득 담아 말했다. 남편은 아내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담고 싶은지 화면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아이 참, 잠깐만 기다려봐~"했다. 두 분이 평소에도 얼마나 서로에게 다정한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두 분의 사랑이 느껴져 괜히 나까지 행복했다.
2. 단체 관광객 유형
조금 더 가니 단체 관광객 무리가 나타났다. 단체 관광객은 사진도 요란하게 찍는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결혼식 단체 사진을 찍을 때처럼 이미 꽃밭 앞에 열댓 명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줄을 맞춰 서 계셨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며 목청껏 외쳤다.
"빨리 와!! 사진 찍는다고!! 여기야 여기!!"
저 멀리 일행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호탕하게 웃으며 달려오시는 게 보였다.
3. 20대 인스타 감성 유형
20대 여자 친구들은 사진을 한 두 번 찍혀본 게 아닌 것 같았다. 꽃을 만지는 손 끝, 고개를 돌린 각도, 시선 처리에서 이미 인스타 감성 전문가의 느낌이 났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찍는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장소를 물색하다가 "저기"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찍히는 사람이 "좋아"하고 가서 기가 막히게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포즈를 취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진에 얼굴이 나오는 걸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렸다. 지금 예쁜 얼굴 많이 찍어두라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4. 아재 유형
드디어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다. 아저씨 한 분이 포즈를 잡고 다른 분이 카메라를 잡았다. 최대한 성의 없게 포즈를 취한 아저씨는 카메라를 잡은 아저씨에게 빨리 찍으라고 다그쳤다.
"뭐 작품 사진 찍냐? 대충 찍어."
"대충 찍고 있는 거여."
그래, 사진 뭐 대충 찍기만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공을 들여.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아재'들이었다는 게 조금 찝찝했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재 유형이다.
5. 끝판왕
순천만 국가정원에는 사진을 찍고 싶은 포인트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꽃이며 풍차며 언덕을 찍어댔다. 아주머니 한 분이 멀리 보이는 봉화언덕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켜자 남편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인터넷에 치면 사진 다 나온다. 그만 찍고 온나!"
남편을 째려보는 아주머니를 보며 웃고 말았다. 쿨내 풀풀 풍기는 이 아저씨와 이 아주머니의 결혼생활이 궁금해졌다.
오늘 마주친 사람들을 떠올리며 글로 쓰고 나니 우리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 다르면서 또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봄날, 정원을 실컷 누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 사장님이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순간 빠르게 '내가 아는 사람인가?', '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뭐지?' 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무 행복해 보이셔서요."
얼마나 행복해 보였으면 처음 보는 사장님이 내 마음을 알아챘을까. 민망해서 크게 웃어버렸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지금 당장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