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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우산 삼천 원에 팔아요.

인심을 잃는 가장 빠른 방법

by 김채원

올 7월은 유난히 축축하고 변덕스러웠다. 맑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마저도 길게 이어지지 않고 싸구려 쿠키 속 초코칩처럼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모처럼 해가 난 날이었다. 마는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절반쯤 걸었을까? 새파랗던 하늘이 삽시간에 검은 구름에 가리고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우산을 안 챙긴 엄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속옷 가게를 발견하고 재빨리 들어갔다. 옷 가게에서 속옷뿐만 아니라 잡화를 같이 팔기도 하니 혹시 우산을 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채로.


"혹시 우산도 파나요?"

"우산은 안 파는데, 잠깐만요~ 헌 우산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거라도 찾아볼게요."


연세가 지긋하신 사장님은 낡은 우산 하나를 엄마에게 건넸다. 얼핏 봐도 우산대가 휘었고 그 때문에 잘 펼쳐지지도 잘 접어지지도 않는 망가진 우산이었다.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게 낫지 않나 고민될 정도로 우산 상태는 안 좋았지만 사장님의 성의를 생각해서 고맙다며 우산을 받아 들었다.


"삼천 원이요."

"네?"

"우산, 삼천 원이라고요."


엄마는 황당했지만 이미 감사 인사까지 해놓고 돌려주기가 민망해서 삼천 원을 주고 얼른 가게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고장 난 우산을 삼천 원에 팔다니 말 대단한 장사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물건을 먼저 쥐어주고 돈을 달라고 하는 이런 수법은 나도 시장에서 몇 번 당한 적이 있다. 얼마냐고 물어보기만 했는데 일단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내밀고는 "오천 원이요", "만 원이요" 하면 안 산다고 하기가 어려워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라도 더 파는 노하우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에 불편함을 느끼고 나면 더 이상 시장에는 가지 않게 된다. 물건마다 가격이 표시되어 있어 얼마인지 물어볼 필요 없고, 계산대에 올려놓기 전까지 얼마든지 물건을 카트에 담았다 뺐다 할 수 있는 마트가 훨씬 편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얼마 전 읽은 책 <장사의 신>이 떠올랐다.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말이지, 비 오는 날도 찬스야. 쓰다 버릴 비닐우산 같은 건 집에 남아돌곤 하잖아. 이것도 최고의 접객 도구가 되지. 손님을 배웅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거든 “이거 가져가서 쓰세요.”라며 내밀 수 있잖아. 가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어디에든 있어. 그러니 마구 이용해줘야 해.

<장사의 신>, 우노 다카시 지음 / 김문정 옮김


속옷 가게 사장님은 버릴 우산을 처리하면서 삼천 원을 벌어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수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천 원, 이천 원씩 뜯어내 모은 돈으로 그 가게를 차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알까? 돈 몇 천 원에 인심을 잃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속옷을 사러 그 가게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요즘엔 조회수를 올리려고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 콘텐츠를 자주 본다. 제목부터 노잼이면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 매력적인 제목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제목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콘텐츠를 볼 때면 고장 난 우산을 삼천 원에 산 것 같은 배신감이 들곤 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팔고 싶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좋아요'를 하나라도 더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을 얻는 일이다. 한 번 왔던 손님이 다시 오게 만들고, '좋아요'를 눌렀던 독자가 '구독'을 누르게 만들려면 고장 난 우산을 팔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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