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비 온 뒤에 더 크게 운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산책을 좋아하지만 날씨가 안 좋은 날 산책하는 건 싫어한다. 내 기준에서는 덥거나 추운 날, 비나 눈이 오는 날,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지나치게 습한 날이 산책하기 안 좋은 날이다. 올여름에도 에어컨을 처음 켠 날부터 산책을 중단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땡볕에서 굳이 팔다리를 움직여 갈증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소를 하다 소파를 옮겼다. 원래는 소파에 앉으면 TV가 보였는데 지금은 소파에 앉으면 창 밖이 보인다. 소파 밑에 묵은 먼지를 닦아내려고 소파를 대충 밀어놨는데, 청소하다 지쳐 소파에 잠깐 앉았다가 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매료되어 그대로 두고 쓰는 중이다.
이제는 밥을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 하늘을 보며 소화시키는 걸 즐긴다. 어제도 그랬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 이 정도 날씨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색깔만 보고 기온을 아는 신비한 능력 같은 건 당연히 없고, 그냥 그런 느낌이 딱 왔다.
그래서, 나갔다.
코 끝으로 들어온 공기에 제법 가을향이 배어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 50분. 내 멋대로 지금을 '오후 7시에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름을 지어놓지 않으면 까먹기 때문이다. 까먹으면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 되어도 놓치고 후회하기 때문이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매미소리가 점점 커져 마치 매미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매미 떼가 내 고막으로 날아드는 것 같아 살짝 무섭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비 온 뒤에 매미가 더 크게 운대."
"왜?"
"비 오는 날 못 울었던 것까지 우느라 그렇대."
처음엔 솔깃했는데 이유가 좀 빈약하게 느껴졌다. 아무렴 매미가 자기가 못 운날이 며칠인지 계산해서 더 크게 울었을라고.
그런데 만약 그 사람 말이 맞다면 매미는 정말 지독하게 성실하다. 비가 와서 못 운 건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지 뭘 또 더 크게 운단 말인가. 매미의 계산대로라면 여름 내내 더워서, 장마라서, 태풍이 와서 산책을 못한 나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걸까? 가을 내내 하루에 2시간씩 걸어야 겨우 채워질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종아리에 알이 배기는 것 같았다.
조금 선선해졌어도 여름은 여름이었다. 걷다 보니 작은 땀방울들이 내 온몸을 샅샅이 덮었다. 요 며칠 기분이 안 좋고 무기력해서 잔뜩 웅크려있었던 터라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이었다.
숨을 크게 쉬며 다짐했다. 나도 매미처럼 그동안 못 행복했던 것까지 더 크게 행복하겠다고.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내리고 있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그땐 정말 그렇게 하겠다고. 누군가가 '에이~ 행복이 뭐 그렇게 계획대로 되는 건 줄 알아?'라고 태클을 걸어도 상관없다. 계획대로 되든 안 되든, 내가 그럴 마음을 먹었다는 게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