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만큼 알게 된다.

본다는 것은 관심이므로

by 김채원

산책로에 나가자마자 벌써 여름이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그렇게 덥지 않았는데도 여름이 왔다고 느꼈다. 세상이 온통 연둣빛 초록이었기 때문이다. 산수유와 벚꽃, 개나리를 보려고 나뭇가지 끝만 쳐다보던 사이에 땅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로써 나는 알게 됐다. 봄은 나뭇가지 끝에서 오고 여름은 땅에서 온다는 걸. 연둣빛 세상을 봄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여름으로 결론지었다. 싱그러운 봄보다는 싱그러운 여름이, 초록빛 봄보다는 초록빛 여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또 새로운 꽃을 발견했다. 그것도 두 개나. 이름 모르는 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검색한다. 오늘 내가 발견한 꽃은 산사나무꽃과 갈퀴나물이었다. 산사나무꽃은 하얀색 꽃이 올망졸망 앙증맞게 피었고 갈퀴나물 꽃은 보라색 종 모양 꽃 여러 개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우연히 검색결과 창에 나온 갈퀴나물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마음이 가는 문장을 만났다.


들꽃은 우리가 보는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보면 예쁘고 무심히 보면 존재조차 희미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니 새로운 관점이다. 곱씹어볼수록 맞는 말이다.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산사나무꽃과 갈퀴나물꽃을 처음 봤을 것 같지는 않다. 늘 무심히 봤기 때문에 존재조차 희미했다가 관심을 가지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니 예뻤고, 예쁘니 사랑스웠고, 사랑스러우니 이름이 궁금했다. 그러다 드디어 산사나무꽃과 갈퀴나물의 이름을 알게 된 거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보는 만큼 알게 된다.


산책로를 반바퀴 이상 걸어가면 중학교가 나온다. 그 앞에는 겨울에도 멋있는 나무가 있다. 보통 나는 '나무'라고 하면 굵은 나무기둥이 어느 정도 반듯하게 자라있고 나무기둥보다 훨씬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멋있는 겨울나무는 나무기둥과 나뭇가지의 굵기 차이가 크지 않고 꽤 아래쪽에서부터 나뭇가지가 뻗어나가 인상 깊었다.


꽃을 검색하는 방법은 알지만 잎도 꽃도 아무것도 없는 나무 이름을 검색하는 방법은 몰라서 지나갈 때마다 궁금해만 하던 그 나무의 정체를 오늘 알게 됐다. 바로 단풍나무였다. 일주일 전에 황매화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단풍나무를 못 알아보다니.


단풍나무는 봄에 주목받는 나무가 아니다. 겨울에 주목받는 나무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가을에 단풍잎이 붉게 물들면 그제야 단풍나무를 찾는다. 가을 내내 단풍을 보며 황홀함을 느꼈어도 잎이 떨어지면 더 이상 단풍나무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을단풍나무는 알지만 겨울단풍나무는 모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보는 만큼 알게 된다.

얼마 전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인테리어 얘기가 나왔다. 누구는 욕실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천장에 실링팬을 달고 싶다고 했다. 가장 최근에 이사를 한 친구가 바닥재를 고를 때 남편과 의견이 달라서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께서 솔로몬 같은 해답을 내놓으셨단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분 의견에 따르세요. 바닥이 마음에 안 들면 하루 종일 바닥만 보고 있게 됩니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맞고,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도 맞으며, 싫은 만큼 보이는 것도 맞다. 결국 본다는 것은 좋든 싫든 관심이다. 아는 만큼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있는 만큼 알게 된다. 걸을 때 마다 나는 왜 걷는 지 생각하곤 했다. 오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의 걷기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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