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기 전에는 못 부르는 이름들
개나리가 사라졌다. 연달아 찾아온 미세먼지와 봄비를 피하려고 며칠 산책을 못 나갔을 뿐인데 개나리가 사라졌다. 봄비가 개나리 나무를 통째로 휩쓸고 갔을 리도 없는데 개나리가 사라졌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개나리 꽃잎 몇 개만이 그곳이 개나리가 있던 자리라는 걸 알려줬다. 개나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꽃잎이 다 떨어진 개나리는 나에게 더 이상 개나리가 아니었다. 나는 꽃이 있어야 나무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다.
3월에 개나리가 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어머, 이게 개나리 나무였구나. 매번 지나가면서도 몰랐네.'
김춘수 시인은 말하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나는 반대로 말하겠다. 그가 꽃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고.
봄 나무라는 말보다 겨울 나무라는 말을 더 자주 써서 미안하다. 봄에는 벚나무, 개나리, 진달래, 철쭉으로 부르던 것들을 겨울에는 그렇게 부를 수 없다. 이게 개나리 나무인지 진달래나무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꽃도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뭉뚱그려 겨울 나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에 산책을 하면서 유독 댕강 잘라놓은 것 같은 나무 무리를 자주 발견했다. 무슨 나무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또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아서 늘 그냥 지나치곤 했다. 오늘 그 나무의 정체를 알게 됐다. 드디어 꽃이 폈기 때문이다. 그 나무는 바로 황매화였다. 그 나무가 황매화라는 걸 알고 나서 적잖이 당황했다. 황매화는 내가 굉장히 아주 많이 매우 몹시 좋아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황매화에게 빠지게 된 그날도 생생히 기억한다. 10년 전쯤 남해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미국마을에 있는 펜션에 머물렀는데 펜션 앞에 황매화가 피어있었다. 햇살이 강한 날이었다. 잎맥이 선명한 초록색 잎에 샛노란 꽃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렇게 좋아하는 황매화도 꽃이 없으면 나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 그러니까 꽃이 피기 전인 사람들을 '무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꽃이 피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없다. 내가 겨울나무를 겨울 나무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들도 무명 가수, 무명작가로 불린다. 겨울나무에도 이름이 있는 것처럼 무명 배우에게도 이름은 있다. 꽃이 피기 전에도 꽃이 지고 난 후에도 나무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