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대화단절 10일의 기록
지구가 멸망한 것도 아닌데 뭐 어때
10일 전,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여느 일요일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전날인 토요일에 물놀이를 다녀와서 모두가 피곤한 일요일이었다는 거다. 아, 우리 두 딸은 자는 사이에 체력이 충전되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과 나만 피곤한 일요일이었다.
아이들은 왜 쉬는 날 더 일찍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새벽닭처럼 울어대는 아이들 목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을 뒤로하고 우리 셋은 거실로 나왔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에 둘째가 계속 침실에 들어가 자는 아빠를 깨우려고 했고, 나는 밥을 하다 말고 달려가 둘째를 둘러업고 다시 불을 끄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많이 피곤했을 남편을 조금이라도 더 재우기 위한 배려였다. 이래저래 나 혼자 바쁜 아침이었다.
어떨 때 보면 우리 둘째는 참 끈기가 있다. 그날도 한두 시간 끈질기게 노력해 결국 아빠를 깨우고 말았다. 남편은 눈을 뜨자마자, 아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둘째에게 책을 읽어줘야 했다.
우리 집에는 남편과 나, 그리고 딸 둘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는데, 우리 넷 말고 발이 달린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내 휴대폰. 내 휴대폰은 책상 위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식탁으로, 어느새 또 소파 틈 사이로 요리조리 잘도 돌아다니는 신기한 녀석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 평균 3번 이상 "내 휴대폰 어딨지?"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내 휴대폰 어딨지?"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평소와 달리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화남, 속상함, 억울함, 수치심, 배신감, 분노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
피곤하겠지, 그래서 예민하겠지, 그래서 짜증이 난 거겠지, 하며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나도 피곤했고, 그럼에도 아침부터 혼자 종종거리며 남편을 조금이라도 더 재우려 했던 터라 이해되기는커녕 서운해지기만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내 말에 남편은 나이가 몇 살인데 자기 물건 하나 못 챙기냐고 다그쳤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내 물건은 못 챙겨도 내 남편, 내 자식은 챙기려고 노력했는데 나이가 몇 살이냐는 소리까지 듣게 되다니.
그 말 이후 남편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았다. 남편은 싸울 때마다 싸움이 조금 커진다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답답해 미칠 것 같다. 결국 나는 폭탄선언을 했다.
"지금 나랑 얘기하지 않으면, 평생 나랑 얘기 못할 줄 알아!"
어이없게도 그렇게 우리는 10일째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 답답하지 않냐고? 생각보다 답답하지는 않다. 다행히 그전부터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스케줄은 캘린더로 확인하면 되고, 우리 둘의 직접적인 대화가 없을 뿐이지 아이도 함께 보고 밥도 함께 먹는다. 며칠 전에는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를 가려고 챙기는데 말없이 자기 짐을 챙겨서 따라나서길래 물놀이도 함께 갔다.
10일 중 5일은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났는데, 그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게 슬퍼서라기보다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게 고작 내가 휴대폰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을 못 해서라는 게 어이없어서였다.
집에 대화할 사람이 한 명 줄어서인지 현실을 잊고 싶어서인지 넷플릭스 보는 시간이 늘었다. 보통 메인에 추천작으로 뜨는 영화 중 끌리는 걸 고르는데, <돈룩업>과 <파라다이스>를 연달아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혜성과 충돌해서 멸망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수명을 40년이나 한 번에 빼앗긴 것도 아니고 고작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아진 것뿐인데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