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보고 왔다. 보라와 파랑이 주를 이루는 환상적인 색감과 물, 불, 흙, 공기 4개의 원소를 소재로 한 신선함,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져 보는 내내 즐거웠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이 영화가 꼭 우리 얘기 같았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화가 많은 불 '앰버'와 눈물이 많은 물 '웨이드'가 사랑에 빠지는데,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게 비슷하다나 뭐라나.
하지만 우리는 앰버나 웨이드와 다른 점이 있다. 일단 영화에서는 한 명이 화가 많고 한 명이 눈물이 많았다면, 우리 부부는 나 혼자 화도 눈물도 많고 남편은 감정이라고는 메말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앰버나 웨이드는 사랑에 빠졌는데 우리는... 아무튼 다르다.
주말에 남편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다녀왔다. 실내에서도 통창을 통해 바다가 훤히 보였지만, 테라스에 나가 바다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음료가 나오기 전, 혼자 테라스의 빈 테이블에 앉았다. 실내에서 유리를 통해 본 바다는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면 테라스에서 온몸으로 만난 바다는 '리얼' 바다였다. 에어컨이 방해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온도와 습도,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파도치는 소리까지.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뤄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이 좋은 걸 남편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불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은 나오자마자 왜 저 위치에 등대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저 배들은 다 뭐 하는 배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는 그저 파란 하늘과 파도치는 바다만 존재했는데 점점 등대와 배가 바다를 덮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오빠, T야? 분위기 깨는 소리 좀 그만해. 나는 바다를 보면서 파도소리를 듣는 지금이 너무 좋단 말이야!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따끔하게 경고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바닷물이 조금 더 파랬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지 않냐? 요즘 수온이 높아서 그런가? 물 색깔이 영 별로다. 어? 저기 밑에 데크 길이 있네. 어디로 내려가는 거지? 여기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남편이 호기심과 불만을 표출할수록 파도소리는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할 말을 다 마친 남편이 너무 습해서 더는 여기에 못 있겠다고 등을 돌렸을 때 나도 남편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결혼 9년 차, 이제는 서로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물과 불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건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확실한 건 우리 남편은 지독한 T라는 거다. 안티(anti), 길티(guilty), 그리고 포티(forty)! 미운 사십 살. 오십 되면 좀 덜 미워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