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누워있었는지 베개가 뜨뜻해졌다. 베개를 뒤집어 시원한 쪽에 머리를 댄다.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래봤자 또 뒷목에 열기가 느껴질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유튜브나 보겠지만.
유튜브 영상을 고를 땐 신중해야 한다. 내가 고른 영상을 토대로 알고리즘이 비슷한 결의 영상을 자동으로 재생해 주기 때문이다. 만약 중간에 마음에 안 드는 영상이 나오면 영상을 다시 고르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끔찍이도 귀찮은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영상을 고른다. 잡생각이 들 틈이 없도록 오디오가 비지 않는 영상이 좋다. 지금 나에게 유튜브는 현실도피처. 무기력한 나를 위한 맞춤 처방이다.
타고나길 생각이 많은 나는 깔깔 웃다가도 우울해진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 탓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둔 덕에 남 탓하는 법을 까먹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결론은 늘 똑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
나는 지금 무기력하다. 기력이 없다는 뜻이다. 문득 무기력의 반대말은 기력일까 유기력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전자라면 무기력에서 '무'를 없애면 기력을 찾을 수 있는데 없는 것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후자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니 가당치 않다. 생각 끝에 무기력증은 불치병이라는 걸 깨닫는다. 무기력 유기력 무기력 유기력. 혼자 조용히 되뇌어보다 피식 웃었다. 주물럭주물럭 쪼물딱 쪼물딱 같은 귀여운 어감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가위에 눌린 적이 몇 번 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랐지만 나중에는 '또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더 빠르게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에 가위눌렸을 때 대처법을 검색했다. 온몸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지만 발가락만 꼼지락 하면 빠르게 풀릴 수 있단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그토록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무기력 유기력에 피식 웃어버린 것처럼.
어느새 다음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뒤통수에 또다시 열기가 느껴진다. 베개를 다시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