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생각하지 말자
둘째, 의견 내지 말자
셋째, 시키는 대로 하자
잠비아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저희(봉사자)들이 염두했던 할 세 가지 원칙입니다.
평소라면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원칙에 의문부터 품었겠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애초에 ‘조용히 시키는 것만 묵묵하게 하고 오자’ 마음을 먹었었기에 반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도착 다음날 아침부터 두 개의 조로 분리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 조는 현지 초등학생들의 점심을 준비하고, 다른 조는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배부할 선물을 준비하거나(3차), 야외로 나가 일을 했습니다.(4차) 오전, 오후, 저녁 매일미사, 4차 기간 동안엔 야근까지 “식사-휴식-일”을 세 번 반복하면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마무리됩니다.
이전 글에 말씀 드렸 듯 저는 첫날, 혹은 세례식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오전 내내 팝콘을 튀겼습니다. 제 임무가 일찍 마무리되면 배식할 때 일손을 더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정 업무 시간 외에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소속된 조에 따른 일을 했습니다.
1. 선물 포장 feat. 끝없는 비닐과 시마
위에서 잠시 언급한 “선물”은 아이들이 급식을 먹는 평일 내내 배부되었습니다. 선물은 주로 빵, 음료수, 시마(옥수수 빻은 가루. 현지 주식.), 사탕, 양파, 감자, 소금, 과자 등으로 구성되었고 내용물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추가 혹은 빠졌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뿐 아니라, 다음날 공소 미사 혹은 세례식과 같은 행사가 있는 전날에도 선물 포장을 했습니다. 4차 기간에는 보다 할 일이 넘쳐나 오전에 포장 시간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녁 미사 후 야근을 했습니다. 이 즈음되면 ‘아직도 할 일이 남았네’하며 속으로 투정을 한 번 부려줍니다. 합심하여 몇 백 단위의 포장을 한 시간 전후로 뚝딱 마치고 한쪽에 가지런히 쌓인 묶음을 보면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숙소로 복귀합니다.
1-1. 틈이 나면 시마와 소금 포대를 열어 소분을 했습니다. 식빵에 잼을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기도 했고요. 더 나아가 이때 사용할 비닐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틈이 나면 비닐을 말아 올렸습니다. 사부작사부작 다 함께 비닐을 만지고 있는 진풍경이 아직도 선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2. 농장
야외서 한 일을 포괄적으로 잡아 “농장”이라고 선언했을 뿐, 매일같이 그 내용은 달라졌습니다. 이를테면, 자라고 있는 아기 수박 덩굴 아래 부시를 깔아주고 액비(액체 비료 : 말린 달걀 껍데기를 으깨 식초와 적당 비율로 섞어 만듦)를 뿌려줍니다. 파도 뽑고, 무도 뽑고, 소나무도 심습니다. 꽃 차를 만들 메리 골드도 수확합니다. 차 만들기에 적절한 메리 골드를 딴 다음 세척하여 고량주에 씻기고, 덖어 말립니다. 또, 싹이 난 핑크빛 옥수수를 밭으로 옮겨 심습니다. 부시를 트럭에 옮기는 작업도 합니다.
야외 작업은 주로 오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아침저녁과 달리 정오를 넘기면 날이 따뜻해지기에 외출하기 적절합니다. 농사 모자, 선글라스, 팔 토시, 목장갑, 그리고 마스크로 중 무장을 합니다. 마스크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사방에서 날리는 흙먼지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흙바닥을 걸을 때면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엘사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 밑으로 얼음 결정이 쭉 뻗어나가듯, 제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펑펑 날렸습니다.
특히 4차 때는 야간 활동까지 하여 종종 육체적인 피로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덩달아 마음까지 급격히 우울해집니다. ‘시키는 대로 하자’ 되뇔수록 ‘들어가 쉬고 싶다’, ‘오늘은 일찍 마무리되기를..(제발!!)’등 잠시 불만 가득한 생각이 스치지만 이내 고이 접어둡니다. 함께하는 분들 중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지쳤지만 오히려 크게 웃으며 단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4차 어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동화되어 제 안의 어린 마음을 돌아보고 낙관적으로 지친 순간을 지나 보냈습니다.
3. 공소 미사와 세례식과 같은 현지 분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있는 날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납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께 나누어 드릴 도시락과 풍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이 트기 전부터 풍선을 불고 묶기를 무한 반복합니다. 잠이 덜 꺤 채로 뇌를 비우고 손을 움직이다 보면 멋진 일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4. 야근을 마치거나 점심시간 이후 짬이 나는 대로 뜨개질도 합니다. 실은 미리 구비되어있었으며, 목도리, 모자 등등 무엇이든 떠 한쪽에 쌓아둡니다. 이는 추운 밤과 극한 일교차를 겪는 원주민분들께 전달될 것이라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마음속 불만이 잦아들었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아침에 일어나 '아.. 오늘도 둥근 해 저거 또 떴네'하며 벌써부터 지치곤 했지만 나중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여행을 떠나고, 집에 돌아간다는 설렘 덕분인지, 좋은 어른들과 잠비아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서인지 어느 이유 하나를 짚을 수는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주어진 일, 나의 비전을 위해 골머리를 앓았던 한국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으니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긍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