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면 향하는 곳, 혜화
나에게 혜화동에 대한 첫 기억은 연극이었다. 혜화동은 종로에서 가장 많은 거주 인구를 가지고 있는 행정동이고 그 범위도 넓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주로 마로니에 혹은 대학로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소극장 연극이나 뮤지컬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대학로에서 처음 보았던 연극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학로 소극장 대부분은 그야말로 ‘소’극장이다. 1열에서 발을 뻗으면 무대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관객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어릴 때는 영화 스크린이나 TV 브라운관과는 달리 무대 위의 진짜 살아있는 배우를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어 찾는 소극장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극장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있으면, 좋아하는 일을 기꺼이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온 힘을 다해 해 내는 사람들과 한 시간이 넘는 동안 함께 호흡하며 하나의 극을 완성하는 것은 늘 설레는 경험이다. 연극의 3요소는 배우, 희곡, 그리고 관객이라고 하는데,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연극’ 그 자체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지역별로 순회공연을 하는 일부 유명 극들도 있기는 하지만, 무대라는 공간에 한정되는 연극의 특성상 꼭 대학로에 와서 봐야만 하는데, 이 덕분에 연극을 보는 사람들에게 연극을 보는 시간은 특별해지고, 연극을 보러 가는 대학로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그래서 보통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이 특별함을 공유하기 위해 소극장을 찾는다. 나의 경우에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이 명절에 가족끼리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학로는 특별함을 공유하며 설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혜화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탁 트인 마로니에 공원이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어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종종 일상이 지치거나 회사가 싫을 때면 연극이나 뮤지컬을 예매해서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 연극은 같이 볼 사람만 있다면(이상하게 혼영은 잘하는데 혼연은 잘 못하겠다. 혼연 잘하는 방법 좀요.) 웬만하면 예매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은 편이다. 관람 후에 예매처 사이트 등에 영혼을 담은 관람후기를 써서 화장품이나 상품권 등의 상품을 자주 받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아직도 나만 안 본 것 같은 ‘김종욱 찾기’를 보았다. 오랜 기간 상연한 극이었기 때문에 무대 세팅은 낡은 편이었고, 그에 비해 3인의 출연진에게는 젊음이 가득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젊은 배우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왔다.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오면 주로 연극 시간에 맞추어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 마련이지만,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를 내서 소극장들이 있는 구역이 아니라 큰길을 건너 건너편 성균관대 쪽으로 향하는 구역에서 식사를 할 것을 추천한다. 소극장이 몰려있는 구역은 좁은 골목까지 인도를 둘 수는 없기에 사람과 차량 통행이 동시에 이루어져 걷다 보면 어느새 뒤따르는 차량을 피하기에 바빠 천천히 걷기에는 부적합한 편이다. 건너편 성균관대를 향하는 구역은 상대적으로 골목이 넓고 골목까지 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으며, 주로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식당들이 많아 식비가 합리적인 편이다. 고깃집이나 이자카야도 꽤 합리적인 가격이고, 10여 년 전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고수하는 초밥집이 얼마 전 이전 개업했으며, 웨이팅 의자가 계단마다 있는 인도 커리집도 있고, 세대를 불문하고 웨이팅을 하고 있는 학림다방과 일식 돈가스집 정돈이 있다. 학림다방에서는 늘 고민하다 결국 비엔나커피를 주문하고, 또 고민하다가 치즈케이크도 주문하고는 둘의 조합이 너무 달아서 후회하는 것을 반복한다. 학림다방과 정돈은 친한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곳으로, 다른 구에서 발령을 온 팀원이나 다른 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기를 데리고 갔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이제 막 핫해지기 시작한 서촌이나 익선동에 비해 혜화역 근처의 대학로는 꽤 넓고 탁 트인 편이고, 오랜 시간 젊은 에너지를 표방해 온 공간이기도 하다. 혜화동은 날씨 좋은 봄날이나 가을날은 물론이고 해가 쨍한 여름날의 하늘마저 아름다운 곳이다. 언젠가의 오후 대학로의 하늘을 보고 있자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나희도와 백이진이 괜히 대학로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대학로에서 특별함을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