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감독은 통상 영화가 못 되는 시간들을 아주 사랑한다(김해리. 묘사하는 마음, 마음산책. 2022).
영화가 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오해를 갖고 있으나, 나 역시 사랑하는 영화의 목록을 보면 특별함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영화들이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건 보고 또 보는 것,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마음 또한 이유없이 보고 싶고, 보고 있음에도 더 보고 싶어하는 마음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 <패터슨>은 시를 사랑하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일상이다. 패터슨은 버스 노선처럼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오가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단순한 일상이 ‘시’적인 삶을 살도록 돕게 하는 이유기도 하다. 삶이 단정할수록 우린 어떤 사유를 하는데에 있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다. 단정하다는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고 나와있다. 그의 옷과 2:8 가르마 핸드폰이 없는 것, 매일 좋지 않은 하루라고 말하는 동료에게 언제나 너 오늘은 어때라고 물어봐주는 것. 구심점을 두고 자신의 반경안에서 돌고 있는, 그의 패터슨 버스와도 같은 삶이다.
짐 자무시 감독은 통상 영화가 못 되는 시간들을 아주 사랑한다. 옴니버스 영화 <커피와 담배>(2003)에서는 별 화제도 없이 커피를 홀짝이는 사람들의 시간 죽이기를 찍었고, <지상의 밤>(1991)에서는 흔히 브리지로나 쓰일 법한 택시 안 풍경으로 영화를 채웠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는 흥뚱항뚱 지내다가 특별한 목적 없이 멀리 떠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서부극 <데드맨>(1995)의 본론은 총알이 몸에 박힌 다음 이승의 끝으로 느릿느릿 다가가는 여정이었다.(김해리. 묘사하는 마음, 마음산책. 2022. p.259.)
미국 인디영화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웨스 앤더슨 감독과 짐 자무시의 비교로 우리의 생각을 이끄러간다. 두 작가는 공히 자기만의 소우주를 영화 속에창조하는 데 발군인데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정제된 부르주아 미학으로 세공된 세계라면, 짐 자무시의 그것은 블루 칼라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만났다 헤어지는 거리의 삶에 친화적이다. 어쩄거나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패터슨>은 같은 테마로 두 편의 성공작을 내놓은 신예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도 나란히 돌아보도록 부추긴다.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주인공인 남성 뮤지션들에게 사랑과 우정은 최공 경지의 예술과 양립하기 어렵다. 두 영화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개인이 철저한 고독 속에 자기를 가두고 삶의 나머지를 얼마간 포기해야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잠재적으로 깔려있다. 반변 짐 자무시의 시인 패터슨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이웃 사람들에게 예술의 재료와 형상화의 영감을 구한다. 자무시에게 예술가의 고독은 훨씬 개방적이고 겸허한 무엇이다. <패터슨>은 무엇보다 현실의 잦은 바람 속에서 자기 안의 고요를 확보하는 사람의 이야기익, 이상하고 슬픈 세상을 견디게 만드는 언어가 시를 포함한 예술이라고 믿는 영화이다.(김해리. 묘사하는 마음, 마음산책. 2022. p.259.)
패터슨은 냉소적이다가도 그렇지 않다.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매일 같은 시간 찾는 맥주집에서 주인과 또 주변인들과도 대화를 잘 나누며. 그 안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도 의연히 대처한다. 자신의 개와 늘 산책을 나서며, 자신의 집 우체통이 매번 넘어져 있어도 불평치 않고 다시 세워놓는다. 일상의 패턴이 있으나, 그 패턴을 다른 사람에게 고집하지 않는 것.
자신이 오랜시간 써 온 자신의 삶이자 전부라고 생각했을 시노트가 자신의 애완견에 의해 찢겼을 때 조차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기준이 뚜렷한 사람들은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타인에 굉장히 비난을 붓는다. 패터슨은 다르다. 그리고 우연히 패터슨이라는 도시를 방문한 한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받아든 빈 노트. 규격 있는 규칙 있는 삶을 살아왔으나, 그것이 무너졌음에도 다시 새 노트에 자신의 규칙을 써내려가는 삶. 무너졌지만 다시 무너진 그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의 삶.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