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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24. 2022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1)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안식처인가.

마치 잘 만든 인생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한편으로는 그 다큐멘터리에 관찰자로 참여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이 영화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건지, 아니면 영화가 흐르던 화면이 나를 빨아들인 건지 모를 기분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클로이 자오 멋지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안식처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경제적 붕괴로 인해 평생을 일한 직장과 주거지에서 쫓겨나게 된 '펀'은 유일하게 갖고 있던 밴을 끌고 다니며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에서 단기로 일하면서 삶을 지속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화였다. 사회에서 내몰리듯, 혹은 자의로 떠난 사람들은 사막에 모였고 각자의 사연을 듣고 연대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없는 와중에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며.

내 눈에 그들의 모습은 딱 한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자유.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없어도 그들의 얼굴에는 자유를 아는 사람들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감각할 수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 아름답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인물과 풍경을 적절한 시선으로 담아낸 카메라도 훌륭했고, 음악은 정말이지 내가 보고 들어온 영화음악 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음악은 영상이 아닌 음악만으로도 충분한 서사가 있는 음악이다.)


그리고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게도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날 것' 같은 연기다. 이상하다. 그녀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배우가 배우 자신만으로 영화를 정말 '영화 같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보기 드문 존재감. 흔들리는 눈동자나 숨소리 같은 것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요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시종일관 빛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엔딩 크레디트에서 나온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외의 대부분의 인물은 영화 속에서와 이름이 같음을, 그들이 실제 노매드임을 알 수 있다. 그 순간의 소름이란. 그들의 눈빛에서,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삶의 질곡에서 헤어 나온 경험을 한 사람만이 낼 수 있을 것 같은 무게감. 스웽키를 잊을 수 없다.


후반부터 목구멍이 아플 정도로 울어 시뻘게진 내 눈앞에 새겨진 문장. See you down the road.

떠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영원한 이별이 없는 그들을 향한 위로.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며 고독해지더라도 우리는 앞으로를 살아내야 한다는 이 영화의 희망적 위안에 숨을 고른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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