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나에게는 다양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다. 보통은 학교를 다니면서 남은 기억인데 짧았지만 굵게 남은 추억 하나를 떠올려 본다.
나는 예대생이었다. 학부 생활을 나름 열심히 하면서 학생회 활동까지 했는데, 그 이유에서인지 그때 마신 술의 양만 해도 남들이 평생 마실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신입생은 입학과 함께 설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캠퍼스 드라마를 보면서 꿈꾸던 장면. 학부의 각종 행사와 동아리 활동, 대학 생활에서 내가 바라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굉장히 체계적인 방송부 활동을 한 나는 입학 후 더 큰 무대에서의 동아리 활동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전공답게 영상을 다루는 동아리부터 해서 연극, 댄스, 노래, 개그 등의 동아리가 다양하게 있었는데, 나는 학생회를 선택했다. 학생회라면 과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학생회의 경쟁률은 치열했다. 난 왜 항상 이런 치열한 것들만 고르고 사는지 정말이지 인생을 쫀쫀하게 사는 것 같다. 그래도 언제나 해냈지만.
학생회라는 동아리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 동아리의 특성상 많은 인원이 들어왔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인원의 반이 떠나가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다. 그 시절엔 오직 패기로만 버텨낸 내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방송부 경험이 그 패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인원의 반이 떠나간 날, 남은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기숙사 주방에 모여서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펼치다가 갑자기 친목 도모를 하고 느닷없이 바다로 떠났다. 아... 이건 스무 살에나 가능한 변덕과 의식과 행동의 흐름이다.
그렇게 우리가 대형 승합차를 렌트해서 떠난 곳은 바로 대천 해수욕장이었다. 저녁 중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다 지고 난 후였다. 우리는 일단 방이 넓은 (그저 방만 넓은) 민박집을 하나 잡고 대충 싸가지고 온 짐들을 풀고 여럿이 조를 나누어서 먹을 것들을 구했다. 당시 우리들의 지갑 상황은 좋지 않아서 흥정이 필요했다. 지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던 일이었으니까.
친구 둘과 함께 해변가의 가게를 물색하다가 3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두둑한 양의 해물탕을 포장해왔다. 학생들이라고 냄비채로 가득 담아 주셨는데, 냄비에 담아주신 것이 해물인지 인심인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는 인심의 해물 냄비를 민박집에 갖다 놓음으로 가장 빨리 미션 클리어를 하고 모래사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의 연애 상담이었다.
한참 이야기에 불이 붙고 있는데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셋에게 한 여성 분이 다가왔다. 얼굴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여신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우리 앞에 선 여성 분은 손에 든 일회용 접시 하나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 내가 산 낙지가 너무 먹고 싶어서 이걸 샀는데 양이 너무 많아. 혹시 좀 나눠 먹을래요?"
그 말에 나는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산 낙지를 쳐다보았다. 맛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의심이 들었다. 나는 왜 갑자기 이걸 우리에게 먹으라고 하시는 거죠?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분을 올려다보았다.
“알아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와서 뜬금없이 산 낙지를 먹으라고 하니 이상하겠지. 그런데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진짜로 양이 많아서 그래. 버리기는 아깝고.”
친구들과 나는 서로를 한참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서 보던 나쁜 일들은 우리한텐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쩌면 주문을 걸고 있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배고픔이란. 그렇게 산 낙지 나눔을 받은 우리는 나머지 친구들과는 나눌만한 양이 아니라 셋이서 그 모래사장에 앉은 채 조용히 나눠 먹었다.
그런데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바다의 풍부한 맛이 입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내 입으로 들어온 낙지다리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멀어져 가는 스카프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테이크 아웃 산 낙지를, 다른 한 손에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던 그 여인을. 자유의 여신상이 바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 입으로 들어온 낙지다리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멀어져 가는 스카프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테이크 아웃 산 낙지를, 다른 한 손에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던 그 여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