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뭇잎 아니야?

콩잎 장아찌 이야기.

by 김커피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먹는 것에 지역별 차이가 있거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고,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먹는 것에도 지역별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을 떠나 멀리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간 나는 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이 집 저 집, 네 방 내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먹고 놀기 바빴다.

사건이 있던 날은 집에서 반찬 택배를 받은 날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나눠 먹으라고 이것저것 푸짐하게 보내주신 반찬들을 정리하고 몇몇 친구들을 불렀다. 밥솥 가득 새 밥을 하고, 오늘 만난 새 반찬들을 꺼내어 한 상 차려 친구들 앞에 내놓았다. 스무 살의 패기는 밥심에서 오는 거지. 역시나 친구들은 맛있다며 잘 먹었다. 그런데 반찬 하나에는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 거다. 그 반찬은 콩잎 장아찌였다.


나는 깻잎을 굉장히 좋아한다. 깻잎은 장아찌로도, 무쳐서도, 데치거나 그냥 그대로 쌈을 싸 먹기에도 좋았다. 이렇게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깻잎보다 좋아하는 것이 콩잎이다. 우리 집에서 콩잎은 장아찌로만 먹는 편이었는데, 나는 콩잎 장아찌만 있어도 밥을 잘 먹을 정도로 그것을 좋아했다. 된장에다 절여 먹기도 하지만, 멸치젓과 고춧가루로 맛을 내는 빨간 장아찌를 특히 좋아했다.

손녀딸이 학교를 다닐 때 내내 도시락을 싸주셨던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훤히 꿰고 계셨던 분이라, 대학 생활을 하면서 보내주시는 반찬들에도 할머니의 손맛 혹은 엄마에게 건넨 조언이 담겨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콩잎 장아찌를 오직 나만 먹고 있었다. 의아했다.

"너희 이거 왜 안 먹어? 이거 맛있는 거잖아."

친구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못 먹는 걸 권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뜨거운 쌀밥 위에 콩잎을 한 장 올려 싸 먹는 나를 쳐다보며 한 친구가 말했다.

"이거 나뭇잎 아니야? 이걸 어떻게 먹어."

나는 실로 충격받았다. 뻔히 내가 먹는 걸 다 봤으면서 나뭇잎이라니.

그리고 속상했다. 할머니가 애써 만들어 주신 콩잎 장아찌가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서 눈물까지 나려고 했다.


밥을 먹다 말고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던 나는 친구들에게 나뭇잎 발언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쓸데없이 진지한 나를 보며 친구들은 나를 속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밥상 앞에 앉아있던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서 태어났고 나만 경상도 토박이였다. 서울에서는 지금껏 살면서 이런 반찬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들도 깻잎은 먹는데 콩잎이라는 건 처음 봤다고. 본인들이 알고 있던 깻잎이라면 초록색의 넙적한 잎이었는데, 콩잎이라고 하는 것은 꼭 가을날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은행잎이나 단풍잎 같은 나뭇잎 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살펴보니 생김새가 그렇게 느껴질 법도 하구나 생각됐다. 게다가 내가 "그럼 생애 처음으로 콩잎을 먹어봐. 맛있어." 하고 권해서 억지로 한 장씩 먹어본 친구들은 식감에 대해서도 보드라운 깻잎에 비해 거친 것이 정말 나뭇잎을 입에 넣고 씹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다들 나뭇잎을 씹어 먹어 본 적은 없었겠지만, 그 말도 백 프로 이해가 갔다.


밥을 다 먹고 상을 치운 뒤 친구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해보았다. 진짜로 콩잎 장아찌는 경상도에서나 먹는 반찬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게 뭐라고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렇다면 콩잎뿐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서울 친구의 집에서 소고기 국을 먹었던 날이 떠올랐다. 친구의 집에서 먹은 소고기 국은 하얀 국물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역시 경상도에서만 소고기 국을 빨간 국물로 먹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순대에 찍어먹는 막장. 서울에서 처음 순대를 먹을 때 막장을 안 주고 소금을 주길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어보니 서울에서는 소금이나 같이 먹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다고 했다. 막장에 양파와 고추를 썰어 함께 올려주는 우리 지역과는 달랐다. 또 내가 좋아하는 물떡, 쥐포튀김, 늙은 호박전, 배추전, 김치 밥국 등등. 생각보다 많은 메뉴가 다르게 먹히고 있거나, 우리만 먹고 있었다.

신기했다. 지역의 차이는 정치적인 분위기나 우리가 말하는 억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음식에도 있었다. 지구본을 돌려보면 대한민국은 참 작은 나라인데도 곳곳마다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 친구들에게도 내가 다른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보편적으로 그렇게 콩잎을 안 먹고, 하얀 소고기 국을 먹고,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콩잎 장아찌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다른 것을 강요할 필요도, 다르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콩잎으로 얻은 이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많은 부분에 녹아들어 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콩잎 장아찌 사건은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다른 것을 강요할 필요도, 다르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