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던 시절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대학 생활부터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는 쭉 서울에서 지냈던 나는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사실상 많지 않았다. 엄마 옆에 붙어서 지낸 시간은 태어나서부터 유치원 다니던 때 정도 까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주말마다 나를 보러 오면 좋기도 했지만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마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멀고 신비한 존재로 느껴졌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을 지나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엄마와는 어색했는데, 아빠도 없이 우리 둘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나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내 성적표를 찾아본 적도 없었다. 우리 집 어른들은 나를 전적으로 믿는 편이긴 했지만, 가끔은 엄마가 진짜 내 엄마가 맞나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대학생이 되고, 사회로 나가 일을 하며 지내면서도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하는 때가 잘 없었다. 엄마가 내게 무관심했던 것만큼 나도 그랬던 건데. 당신 나이가 들 수록 엄마는 그 사실에 대해 서운해했다. 내 나이가 들 수록 서운해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됐고.
스무 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단연코 젊었다. 학교 운동회 때 엄마가 오면 다른 엄마들과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다른 나의 엄마를 보고 몰래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가을 운동회인데 긴 머리를 높이 묶고 반 바지를 입고 온 엄마가 미웠다. 그 당시엔 '엄마는 저렇게 튀고 싶을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나이에는 당연했던 걸지도 모른다. 당신도 멋을 부리고 싶은 20대의 청춘이었으니까.
그런 엄마에게도 피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갱년기. 같은 여성으로 살아오며 호르몬에 관해서라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걱정이 됐다. 더군다나 엄마는 멀리 살고 있는 딸 이외의 '살아서 성장하는' 것들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화분이라던지, 반려동물이라던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길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이미 다 성인이 되어 혼자 사는 데 적응됐던 딸과 엄마는 처음으로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부딪히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주 투닥거리며 싸우면서도 조금만 지나면 "커피 마실래?"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다.
엄마는 부지런한 살림꾼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깔끔한 사람이고, 매 끼니 새 밥과 다른 반찬을 해 주는 사람이다. 자취를 하며 인스턴트에 길들여졌던 내 입맛은 금세 매일 먹는 집밥에 길들여졌다.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첫 해 겨울, 생일을 앞둔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생일 밥도 맨날 내가 해 먹는다."
그 말을 듣고 어쩐지 좀 짠했다.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는 어려서부터 늘 그렇게 밥 하는 사람이었다. 본인도 어리면서 더 어린 동생들의 밥을 챙겨 먹이느라 바빴고, 그러다 실수로 냄비 하나라도 태워먹으면 할머니에게 매를 맞곤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결심했다. 엄마의 생일 밥만큼은 내가 하기로.
워낙 손맛이 좋은 엄마를 닮아서일까, 나도 어디서 요리를 하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엄마가 만드는 것만큼의 맛은 자신 없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가 만족할 만한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었다. 생일 전 날밤 불려놓았던 미역을 씻어 물기를 꽉 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고 들기름과 함께 먼저 볶다가, 준비해둔 바지락 살과 홍합 살까지 넣고 다진 마늘과 함께 볶았다. 어느 정도 볶다가 이때다 싶을 때 물을 붓는데 (※여기서 '이때다'는 전국에 계신 어머님들의 요리 타이밍) 국간장을 넣고 팔팔 끓이면 미역국이 완성된다.
생일 밥 상을 차려 내놓고 엄마가 미역국을 한 술 떠서 입으로 가져갈 때, 나는 입시 때 합격 문자를 받기 전만큼이나 떨렸다. 엄마 기준에서 내 요리가 객관적으로 백 점일 수는 없으나 주관적으로 백 점이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매일 내게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가 매번 "맛있나?" 하고 묻는 이유를. 나는 그때마다 무뚝뚝하게 "맛있다" 하고 말았었는데, 엄마는 내가 묻기도 전에 "맛있네!" 하며 웃었다.
"잘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참 쉽게 하는 말인데도 엄마에게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겨우 하루, 엄마의 생일 밥상을 차리면서도 엄마가 맛있게 잘 먹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나는 그때부터 매일 엄마의 밥상을 소중히 생각한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 먹인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 먹인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