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떡볶이 이야기.
언젠가 그런 글을 읽었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 첫 번째가 떡볶이라고. 시대를 불문하고 드라마 속 방과 후의 여학생들이 "떡볶이 먹으러 갈래?" 하고 말하는 장면도 꽤 많지 않았던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떡볶이는 실로 많은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메뉴다. 오죽하면 화가 난 여자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떡볶이를 사준다고 해서 화를 풀었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존재감 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마치고 떡볶이 먹으러 갈까?"
나 역시 친구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럴 때마다 흔쾌히 예스, 먹기도 잘 먹었지만 나는 사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떡볶이가 먹고 싶다.
내 생에서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떡볶이 집은 많지 않았다.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은 계란집 한편에 자리 잡고 떡볶이와 어묵만을 팔던 할머니 집이었는데 협소한 공간이라 아이들 몇 명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었고 가게의 이름도, 간판도 없었다. 동네 아이들끼리는 "계란집 옆에 할머니 집"으로 통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할머니의 떡볶이만큼 맛있는 떡볶이를 찾진 못했다.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던 할머니께 500원을 내고 자리에 앉으면 하얀 접시에 삶은 계란 하나와 길고 굵게 썰은 떡과 어묵, 파가 빨간 국물에 잠겨 있는 떡볶이를 내주셨다. 떡과 어묵에 토핑 하듯 파를 올려 번갈아가며 베어 먹은 다음 달짝지근한 국물에 계란을 깨서 숟가락으로 한 입씩 떠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 집의 떡볶이를 추앙할 지경이었는데, 2층 집에 살던 내가 우연히 건너편 집 옥탑방에서 나오는 할머니를 본 후로 매일 집을 나설 때면 그 옥탑방을 보며 '할머니 건강하셔서 맛있는 떡볶이 계속 먹게 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말하곤 했다. 여전히 그리운 맛이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맛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 큰 추억으로 남은 '할머니의 맛'이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시내에 있는 떡볶이 집엘 자주 갔다. 마산 사람이라면 몽고간장이나 아귀찜만큼이나 모르기가 힘들었던 유명한 떡볶이 집이었는데, 떡볶이 그릇을 꽃 모양의 화분 받침으로 받쳐서 주는 특이점이 있던 곳이다. 참 신기한 게, 이 집 떡볶이는 그것 말고는 특별한 게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이상하게 자주 당겼다. 많이 맵지도, 달지도 않은 국물 맛이 그 이유였는데 떡이나 어묵을 먹을 때 반드시 국물과 같이 떠서 먹어야 했다. 어릴 때 먹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술안주로도 괜찮겠다 싶은 국물 맛이었으니까. 지금까지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맛을 뽐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국인의 국물 맛'이다.
30대의 나는 어느 때보다 떡볶이를 자주 찾는 중이다. 집과 가까운 시장 떡볶이를 맛본 이후부터 그렇게 됐는데, 앞서 말했던 집들과는 달리 국물이 적고 걸쭉한 떡볶이다. 길에서 파는 떡볶이 집으로 이름에 '원조'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수많은 간판에서 언급되며 원조라는 말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이건 진짜 원조가 맞을 거야 긍정할 정도로 학교 앞 옛날 떡볶이 맛을 구현하는 곳이다. 계란을 대신한 메추리알처럼 귀여운 '학교 앞 맛'이다.
죽 늘어놓고 보니,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민망해졌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삐죽거리며 말하다가 결국엔 진심을 들켜버리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좋아함이 충분히 드러난다.
이제 돌려 말하지 않아야겠다. 애매한 기억보다 분명한 기억이 많다면 그냥 자신 있게.
나 떡볶이 좋아하네?
나 너 좋아하네? 하고 말이다.
나는 사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떡볶이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