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보지 않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 나쁘지 않다. 소식을 발 빠르게 알지 못한다는, 거기서 오는 이상한 도태감도 조금씩 덜어지고 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나의 목표대로 조금 더 건강하게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디지털 시대의 유저로 남을 수 있을 듯했다.
휴대전화를 조금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감정들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느끼더라도 아주 미미하게 느꼈던 감정이 조금 더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니 건강한 한쪽으로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해방감도 더 커졌다.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굳이 찾아서 받을 필요가 없어지니 몸의 순환도 조금 더 안정감 있게 흐른다고 해야 할까. 스마트폰을 가까이하며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요즘 그 반대로, 굳이 스마트폰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중이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간단하면서도 핵심만 추린 영상만 접하다가 어쩌면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을 가까이하게 되니 시간을 알뜰하게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쌓아놓은 책을 한 권씩 읽으며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여러 세계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이 새롭고, 즐겁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을 덮은 후 오랫동안 표지를 쓰다듬고 책의 냄새를 맡으며 여운을 즐긴다. 의무감으로 무언가 읽거나,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시선만 고정해 어지러운 영상을 보는 것보다, 몸을 직접 움직이며 살아있는 소리와 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니 몸이 깨어나는 것 같다.
조금 느리고 더디더라도, 여러 어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삶을 편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가까운 거리도 걷기 싫어 그저 스마트폰의 어플 도움을 받아 공유 킥보드를 찾는 일을 아예 없앴다. 걸으면서 날씨를 느끼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이 몸을 환기시키는 것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물론, 공유 킥보드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린다). SNS에 집착적으로 접속해 다른 친구들의 일상을 엿봤던 나는 이제 그들의 일상이 더 궁금하지 않다. 부럽지 않다. 여행 간 친구의 사진을 보며 나는 왜 여행을 가지 못하는가, 그가 가진 여유와 행복한 얼굴을 부러워했던 나는, 이제 책을 읽으며 더 먼 곳까지 간다. 심지어 우주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느라 잡지 못했던 가족의 손을 잡기도 하고, 강아지와 조금 더 많이 눈을 마주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굳이 따졌을 때,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나의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있다. 아직 스마트폰이 이긴 사례는 없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하늘을 보는 것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읽던 책을 펼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친구와 눈을 마주하며 실없는 웃음을 나누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체험 중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미 스마트화된 상태라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한 점이 상당히 많다. 가고 싶은 카페나 음식점의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는 간단한 일이나 보고 싶은 영화의 좌석 예매, 혹은 오늘의 날씨 같은 것도 스마트폰으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으니. 잘 사용하면 더 멋진 삶, 간편한 삶이 이루어지겠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디지털화' 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운동 삼아 가까운 카페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더 편하니 말이다.
스마트폰을 멀리할수록 이상한 감정이 가까워진다. 왜 이상하다고 표현하냐면……. 느낀 지 오래되어 조금 생소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설렘이나 몸의 온도가 높아지는 느낌, 읽음으로써 채워지는 느낌, 스스로 해내는 것에서 오는 묘한 자신감 등이 끊임없이 나를 파고든다.
현재 시간 오후 세 시. 오전 열 시에 일어난 내가 휴대전화를 깨운 횟수는 20번이고, 스크린타임은 30분이다. 오늘은 추석이라 안부 메시지를 보낸 탓에 카카오톡을 제일 많이 썼다. 여러 면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