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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 흉내

제자리걸음이라도 괜찮아, 딛고 선 땅을 다지는 일이니까

by 김단한

연말이 되면 늘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어느 지점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줄곧 하게 되는 행위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 때, '끝'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뜻이 담길 수 있겠지만,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는 말그대로 그저 '끝'일 때, 우리는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는 행위는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돌아보는 행위 자체가 품이 드는 일이기에, 어느정도의 무게를 동반하고 있다고 여긴다. 내가 잘 걸어왔는지 보는 행위가 되기도 하겠고,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지 가늠하는 행위가 되기도 하겠다.


나는 뒤를 돌아볼 때 뜸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진 잘 모르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지 않고 남겨두는 마음이랄까? 과정이 어찌되었건,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잘 포장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12월은 내내 배가 살살 간지럽고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에 뜸을 들인다고 해서 좋지 않았던 한 해를 완벽했다고 바꿔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저것 핑계를 만들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결과가 처참하더라도, 이건 이래서 그랬고, 저건 저래서 그랬다고 기꺼이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그러다가 홀랑 다음 해로 넘어가버리면, 모르겠다! 이번 년도 화이팅! 하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겠지. 어쩔 수 없다. 그것도 나의 모습이고, 나는 2025년을 살아낼테니.


달력에는 그날 내가 했던 일이나 중요한 일의 키워드가 간단히 적혔다. 몇 년전부터 달력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탁상 달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정말 이랬다고?' 싶은 일도 몇 가지 있지만, 대부분 나는 나에게 닥쳐오는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낸 듯하다. 나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날짜에 비스듬한 작대기를 긋는 습관이 있는데,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왠지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이번 년도는 체크 표시로 바꿨다. 하루를 잘 이겨냈다, 해냈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에는 늘 후회가 깃들고, 앞을 보는 행위에는 다시금 희망이 섞이곤 한다.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이번 년도는 어땠는가? 외부에서 내부로 침투한 일들, 내부에서 외부로 표출된 일들이 뒤섞인다. 살아내느라 끊임없이 진동하고, 움직였기 때문에 바쁘게 살았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떠나보내기도 했다.


서른에 막 접어들무렵의 연말을 기억한다. 좀 있으면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인데, 나는 몇 주째 방안에 틀어박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하면 세상이 나를 잠시 기다려줄 것처럼 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 물어본다면,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야 그렇다는 말이다. 그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무엇이 답일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나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엎어졌던 것도, 다시 일어난 것도 모두 나의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라 나는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 참 우습다. 그때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그 문제가 사소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받아들이는 '나'라는 입장에서의 변화가 있는 것이겠지. 가끔은 이렇게 나의 내면의 단단함을 시험해볼 기세로 부딪히는 각종 고난과 문제를 맞이해도 좋을 듯하다. 그것으로 인해 내면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사실, 우리의 내면은 들어가는 길이 참으로 복잡해서 가끔은 나 자신도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러니, 이런 경험을 통해 가끔은 마음을 뒤집어 엎거나 다지면서 새로이 가져보는 것도 나를 돌보는 방법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은 아프지 않은가? 지금은 엎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온전히 걷고 있는가?


비틀거리며 걸을 수도 있고, 걷는 척하면 하며 제자리에서 땅을 구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그런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면 영영 멈추게 될 것 같아 억지로라도 발을 구르고 있다는 뜻이다. 방향만 잡히면,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긴장 상태는 아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기 전에, 머리를 굴린다. 제자리걸음이 합당할 수 있는 이유를 얼른 생각해내야 한다.


나는 제자리를 걸음으로써, 땅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아졌다. 애초에 괜찮아지지 않을 것도 없었지만, 우선은 괜찮아져서 다행이었다. 나는 어떠한 작은 결론에 이른다. '동력'을 잃지 않으면, 무엇이든 괜찮아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결론.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진동하는 존재다. 심장 박동수에 맞춰 숨을 가다듬을 수 있다. 쉬지 않는 진동이 있는 이상, 그것을 동력 삼아 어떻게든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려 하는 것은 훌륭하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적어도 나는, 우리는 '뛰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걸음이 조금 늦어질지언정, 나는 가고 있다. 우리는,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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