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를 오래 들여다보던 사람, 말없이 술만 마시는 사람
혼자 온 손님은 주문이 빠르다. 주문만이 아니다. 혼자 온 손님은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부터, 착석하여 메뉴판을 받는 순간까지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오로지 본인만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 나는 가끔 혼자 온 손님의 그런 면모에 반하곤 한다. 자유로워보인달까. 대체로 모임이 잦은 가게 특성상 이렇게 혼자 온 손님은 아주 귀하다. 그의 모든 행동은 내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눈에 콕콕 박힌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를 마주한 시각은 오후 네 시 정각이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혼자여도 괜찮아요? 나는 짧은 사이 대답을 고민한다. 그럼요, 괜찮죠, 괜찮다마다요. 장황한 대답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한다. 네,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메뉴판을 들고 돌아서니 저 멀리 구석에 앉은 그가 보인다. 혼자 온 손님들이 애용하는 자리는 매번 같다. 조용하면서도 시선이 크게 닿지 않으며, 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구석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나에게 던지는 '혼자여도 괜찮나요?'라는 질문을 되새겨본다. 그 질문은 매번 묘하게 들린다. 여기서 혼자 술을 마셔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지만, 가끔은 그 질문이 '제가 혼자여도 괜찮을까요?'로 들리는 날이 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일지도.
사람은 혼자여도 괜찮다. 혼자서 이자카야를 방문해 술을 마실 수 있고, 다양한 메뉴를 먹어볼 수도 있다.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에게 술과 잔을 내어주고, 음식을 건네주는 것 이외에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공간에 있지만, 철저히 서로를 밀어낸다. 그러나, 서로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안다. 나는 그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가끔 그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보았을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어떤 가게를 지나쳤을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일로 인해 술을 마시고 싶어졌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가게의 문을 열었을까. 혼자 온 손님에 있어선 이러한 부분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사람은 혼자가 되면 주위에 더 집중하게 되는 듯하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게를 채우는 노래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동적으로 설정된 플레이리스트에선 인기 있는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랜덤으로 나오기도 했다. 일본어로 된 노래가 나온 적도 있다. 노래를 집중해서 듣거나, 흥얼거릴 시간이 없으므로 나는 매번 잠깐 귀를 스치는 낯익은 후렴에 반짝 반가워하곤 했는데, 혼자 온 손님들은 매번 가게의 노래 선곡에 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여기 노래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여기 노래 왜 이렇게 좋아요? 원래 한 병만 마시려 했는데, 더 마시게 됐잖아요. 그들이 칭찬하는 노래는 대부분 애절한 발라드였고, 가수는 조성모나 엠씨더맥스였다.
나는 홀로 온 손님의 눈치를 본다. 괜히 그러게 된다. 내가 혼자인 것과 저 사람이 혼자인 것은 다른 색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나는 나의 '혼자'를 생각하며 괜히 혼자 온 손님을 걱정하거나 격려한다. 혼자 온 손님은 주문이 빠른 만큼, 술을 마시는 속도도 빠르다. 잔이 비는 속도가 대화의 속도를 대신하는 걸까. 테이블에선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고, 흐르지 않는다. 그저 술잔만이 바쁘게 움직인다.
혼술. 나도 언젠가 한번 홀로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술을 마시고 싶은데 그렇게 많이 마시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집에서 마시기는 싫고, 뭐 그런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날이었다. 친구와 떠드는 술자리가 아니라 그냥 조용히 술을 홀짝이고 싶은 날. 혼술을 하면서 나는 그 시간이 즐겁고 좋기도, 또 외롭고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마다 혼술의 방식은 모두 다를 테지. 나는 기우는 술잔을 보며 감히 혼자 온 손님의 하루를 헤아려본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술을 가만히 넘기며 또 하루를 버텨낸 손님에게 그날은 조금 더 크게, '안녕히 가시라'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