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 사이
2026년이다. 나는 서른일곱이 되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콧물을 훌쩍이며, 아, 나는 서른일곱이 되었구나 중얼거렸다. 연말과 연초에는 늘 그렇듯 가만히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살아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다가오는 해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그 해의 내 대표곡이 되어줄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넣는 일도 이번엔 하지 않았다. 흘러가듯 연말을 보내고, 흐르듯 연초를 맞이했다. 손님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칠 때, 나는 그들의 흥을 더 돋우기 위해 유튜브에서 '제야의 종'을 검색했는데, 애석하게도 3개나 되는 광고로 인해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한숨을 쉬며 1월 1일을 맞이했다.
서른일곱.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스스로 '작가'라 칭한다. 몇 권의 책을 내고, 웹소설을 쓰고, 수상 경력도 있으니 영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나 스스로 '작가'를 칭하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다. 글을 쓰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는 일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한 탓일 테지. 마냥 글 쓰는 일에 시간을 보내기엔 나의 삶은 무척 퍽퍽하다. 일을 해야 했다. 쉽게 말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수상 경력과 책을 출판한 경력은 나를 '작가'로 남겨두지만, 통장 잔고나 그 후의 일정까지 책임져주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경력이나 기술이 없는 터라 일할 곳이 없어 헤매고, 글을 붙잡았다가 놓고, 방황하며 멈추는 일이 잦아질 때마다 나는 제대로 붙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손톱자국만 남긴, 그렇게 내 손 안에서 스르르 빠져나간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괴로워했다.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애매하고, 작가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나는 지금 이자카야에서 일한다. 오후 네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홀을 보고, 접시를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첫날,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이름표는 없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외친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생각해 온 작가의 얼굴과는 달랐다. 더 피곤해 보였고, 더 현실적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란 질문이 남은 얼굴. 매일 떠오르는 이 질문은 나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 생각한 대로 문장을 쓰지 못할 때, 원고가 반려되거나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기를 쓰고 낸 책의 반응이 미미할 때, 그렇게 내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을 때도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때와 나와 지금 나의 다른 점이라면, 노트북 앞이 아니라 유니폼을 입고 손님들 앞에 서 있다는 것.
글을 쓰고 싶다, 뭐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출입문을 바라보았을 때 손님이 들어오고, 나는 '어서 오세요!'를 외친다. 참, 이상하지.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말이 어떤 글의 첫 문장처럼 느껴진다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쓰지 못했지만, 뭐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글 쓰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여러 이야기를 쓰고, 나누고 싶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식은 적 없는 마음을 다시 달궈내고 싶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시간을, 내가 마주하는 얼굴들을, 문득 떠오르는 어떤 질문을 지나치지 않고 글로 써도 괜찮지 않을까. 오후 네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내가 마주하는 얼굴들은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를 흘리고 떠나간다. 테이블에 떨어진 표정들, 술잔 위에 묻은 말들. 나는 그것을 주워 담으며 또 한 번 느꼈다. 아, 나는 여전히 이야기와 문장 속에 살고 있구나. 적어도 완전히 멈춘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경로가 아닐지언정, 나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 사이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쓰기로 했다. 그 '사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