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롱 시한부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by 김단한

안나가 선고를 받았을 땐, 나도 덩달아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얼마 안 있다가 생을 마감할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얼른 뭐라도 해서 어떤 것이든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해놓은 것이라도 마무리 지으려고 하니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결국 조급해지고, 멍해지고, 나는 한없이 바보와 같고, 초침 소리는 크게 들려오고, 불안해지기만 했던. 자책과 미움과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과 막막함이 꾹꾹 뭉쳐져 비탈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별의 별별 감정이 들러붙어 그것은 자꾸만 크기를 더해가고.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되고. 나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고.


안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몸도 아프지 않고, 어떠한 증세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평소처럼 있다가 갈 때가 되어서 가면 된다고만 말한다. 아주 쉽게 말한다. 미련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모든 것을 남은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몸만 가면 되는 것처럼 말한다. 남은 사람의 역할을 맡은 나는 그런 순간들이 언뜻언뜻 보일 때마다 다시 한번, 비탈을 구르고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된다.


요즘의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무작정 떼를 쓰는 아이가 아니라, 이미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이래저래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된 느낌이다. 금방 다녀올게, 우리는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열심히 할 일을 잘하고 있으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등등의 말을 꺼내는 사람과는 다시 만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니까, 그 말을 온전히 믿어야 하는, 믿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작은 손가락을 굽혀가며 날짜를 헤아리는 아이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면서도.


딱 천 번만 더 얼굴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만 번도 아니고, 천 번만. 떨어져 있을 땐 지금처럼 당연히 한 시간씩 전화를 하고, 그것은 천 번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얼굴 보는 것만 딱 천 번이면 좋겠다. 정말 그러기만 하면 딱 좋겠다. 그러면, 하루하루마다 꽉꽉 채울 수 있을 텐데. 굳이 어디를 가지 않고도 이야기로만, 정말 서로를 향한 말과 어떠한 추억으로만 시간을 엮어 보낼 수 있을 텐데.


뭔들 안 아쉽겠나. 죽음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신기하다. 2개월, 3개월이라는 단어도 신기하다. 누군가는 기다리는 것, 누군가는 기다리지 않는 것. 죽음이라는 단어가 끼어들면 모든 것이 뿌옇게 변하는 느낌이다. 조급해지고,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고, 모든 감정이 날이 선 채 새겨진다. 그래서 아픈가. 그래서 아픈 것 같다. 2개월, 3개월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최소, 최대도 그렇다. 딱 그 날짜에 맞추어서 사람이 죽거나 살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 날짜에 얽매이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 어영부영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다. 나는 날짜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아는 아픔이라 더 무섭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슬플까, 벌써부터 가늠이 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년 반 정도가 다 되어간다. 외할아버지가 가셨을 때 나는 후회로 범벅된 눈물을 흘렸다. 조금 더 일찍, 내가 뭐라도 할걸. 내가 뭐라도 해서, 돼서, 뭔가를 좀 보여드릴걸. 막연함과 막연함이 더해져 후회가 되었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다시는 누구도 그냥 보내지 말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후회와 막연함이 밀려오려 한다.


그러나 나는 해맑게 웃는 안나 앞에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더 크게 웃고, 더 웃긴 장난을 친다. 나는 우습게도 안나 옆에서 자연스레 시한부가 된다. 안나와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에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안나가 무언가를 보는 시선을 담아내려다 보니, 안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시한부가 되었다. 나는 나를 언제부턴가 나이롱 시한부라 칭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안나는 자신이야말로 제대로 된 나이롱 시한부란다.


안나는 가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며, 아픈 것도 다 거짓말 같다고 말한다. 통증이 없다고, 오늘은 피를 쏟지 않았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나는 나이롱 시한부다! 나이롱 시한부! 하나도 안 아픈 시한부다! 안 아프다고 생각하면 안 아프다! 나는 백 살까지 살 거다! 나는 악바리다! 지(죽음)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라지! 짓궂은 목소리는 정말로 안나를 한순간에 나이롱 시한부로 만들어버린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칭 '나이롱 시한부'인 안나는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안나는 몸 상태가 괜찮아져 기분이 좋아질 때면, 노래를 부른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안나의 노랫소리는 흥겹다. 나는 이 노래를 1년 뒤에도, 2년 뒤에도 듣고 싶은데. 나는 안나에게 노래를 한 번만 더 불러달라고 말한다. 안나는 이 노래가 나에게 딱 맞다고, 나의 주제가로 정했으면 좋겠다고, 힘들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라고 말하며 한번 더 노래를 부른다. 틀니를 뺀 입에서 바람이 슉슉 새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언제나 가사를 또박또박 부르려 노력한다.


나는 언제까지고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나는 내가 이 노래를 기억하여 스스로 부르고 다니길 원하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안나의 웅얼거리던 목소리, 음정과 박자를 모두 무시한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목소리만을 오래오래 기억하리라. 신기하게도 안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우리가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떠한 죽음을 본다. 그 죽음을 보는 나 조차도 죽음과 멀다고 말할 순 없겠지.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지표는 없겠지만, 우린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나 포함 이 세상의 모든 나이롱 시한부들에게, 오늘도 잘 버텨냈다는 말을 건네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2021-10-10 19;55;35.PNG 쨍하고 해 뜰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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