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착하다는 소리가 욕이야 2

그러니 안 차카게 좀 살아보자

by 김단한

나는 ‘착해서’ 손해를 많이 본 사람인가? 완전히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아니, 나 전혀 안 착한데’라는 말이 전혀 먹히지 않는 사람이다. 나를 한 번 본 사람은 나더러 착하다는 표현을 쓴다. 걔, 착하더라. 나를 두 번 본 사람도 나더러 착하다는 표현을 쓴다. 걔, 착하던데. 나를 여러 번 본 사람은 나더러 착하다는 표현을 쓰며 이렇게 덧붙인다. 네가 바보같이 착해서 그런 거야. 왜 착하기만 해. 다 네가 착한 거 알고 그런 거야.


착한 것은 바보 같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뜻을 가진 것일까? 글쎄. 바보 같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쉬운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는 뜻일까. 아무튼,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냥 절대다수에 의해 그렇게 바보가 되어버리는 걸까. 나는 그럼 착한 걸까, 바보인 걸까.


착하기만 한 것은 무엇일까? 글쎄. 그냥 한없이 착하기만 하다는 걸까.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번거로운 질문을 하지 않아서, 그냥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어서, 때가 되면 조용히 잠을 자서 착하다는 것일까.


다 내가 착한 거 알고 그런 거라는 말은 내가 ‘착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는 이야기다. 나쁘지 않고 착해버렸으므로, 착하지 아니할 수 없어서, 그래서 너무 착한 나머지, 착하고 말았기에, 그들이 주는 불덩이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가슴에 얹어놓았던 걸까.


나는 착하고 싶은가?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착하게 살았던가? 아니, 그렇지도 않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고 싶은가? 아니, 안 착하고 싶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숨어있고, 누군가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절대다수에 이끌려 모른 척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입을 꾹 다물며,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며 나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내 속이 썩어 들어가는 줄 모르고 남을 보며 미소를 보내며, 남이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 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보고, 그저 남들에게 좋은 평을 듣고 싶어 나의 의견은 내세우지 못한 채 밤새 끙끙 앓고, 남이 아무렇게나 뱉는 말에 상처 받지만 상처 받지 않은 척하며, 남이 들이미는 잣대에 나를 맞춰가며 반박 한 번 못하고, 나의 아픔과 비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나에 대한 평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고작 그들의 면면을 생각해 입도 못 꺼내는 것이 모두가 말하는 ‘착한’ 것이라면.


나는 고마 안 할란다.


그런 것이 ‘착한 것’에 속한다면 이제 안 그러고 싶고 안 착하고 싶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더 안 착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할 것이다. 나의 말에 안나는 그저 웃는다. 그게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안나 : 착해도 좋고, 안 착해도 좋고, 바보 같아도 좋고, 다 좋으니까 기만 죽지 마라. 기죽지 말고 살아라.


안나는 세상엔 분명 '착함'이 필요하고, '착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처하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캐릭터의 성질을 부여받은 이상 어떤 누구들은 이 세상이란 무대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착한 사람'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가끔은 바보도 되어보고, 가끔은 천지 무식한 사람도 되어보고, 또 가끔은 누구도 얕보지 못하게 어깨를 딱 펴면서 착하게 살아보자고, 안나는 이야기 한다.


그러다가 또 여태 했던 모든 말을 뒤집는 말을 뱉어버린다.


안나 : 됐다! 착하게 사는 기 무신 소용이고, 그냥 안 차카게 살자! 안 차카게 살자!


나는 안나와 더불어 안 차카게 살자! 를 외치며 만세 삼창을 외친다. 만세 삼창이 끝나면 우리는 또 착한 사람들로 돌아갈 것이다.


KakaoTalk_20211012_220944855.jpg 외할아버지께서 집 뒤편에 심어두었던 꽃나무, 이제 꽃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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