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차카게 살자
안나는 내가 착해서 큰일이라고 했다. 착하다는 말에 은근한 강박이 있는 내가 말했다. 할머니, 요즘 세상에선 착하다는 말이 그리 좋은 뜻만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애매하게 쓰이는 것 같아. 그냥 바보 같음을 뭉뚱그려서 착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내 말에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원래 그런 뜻으로 쓰이는 거 아니냐고. 착하다는 것은 답답한 것, 배려가 너무 많은 것, 그러면서 자기 속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는 것을 뜻하기도 하니 착하다는 말이 바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잠시 뒤 안나는 말을 바꿨다. 안나는 착하다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욕인 것은 아니랬다.
착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초월한 것.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라는 표현도 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안나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애는 착해. 쟤 착해서 그래……. 칭찬인지 비꼬는 말인지 모를 '착하단'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어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자 굳이 어떤 행동을 공들여서 한 적은 없다. 나는, 그저, 그냥,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착한 아이였다.
'착하다'는 말을 검색해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이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나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한가? 음, 잘 모르겠다. 그러면, 언행이나 마음씨를 곱고 바르며 상냥하게 쓰려고 노력했던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곱고 바르며 상냥한 것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억지로 착하지 않으려 노력했던가. 그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착한 아이였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없고, 키우는 강아지가 있으니 강아지에 상황을 대입해보겠다. 내가 강아지를 향해 ‘착하다’ 말을 하는 건 언제일까. 나에게 내내 장난을 걸다 지쳐 곤히 잠든 모습을 볼 때, 던진 장난감을 다시 가지고 올 때, 간식이나 사료를 다 먹었을 때, 목욕하고 털을 말릴 때, 낯선 소리에 왕창 짖을 때…‥. 음. 여태 쓴 말을 다시 풀어서 보면 이렇겠다. 장난을 치다 지쳐 곤히 잠들어 이제 좀 책 한 장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을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던진 장난감을 물어오는 귀여움에 반했을 때, 남은 간식이나 사료를 버릴 일이 없게 다 먹었을 때, 목욕하고 털을 말릴 때 제발 신경질을 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강아지를 달랠 때, 낯선 소리에 왕창 짖는 강아지 귀에 대고 제발, 착하지, 착하지, 너 자꾸 짖으면 나 쫓겨나 할 때……. 음.
착하다는 말은 결국 네가 착하게 굴었으면 한단 말이 내포된 것일까.
아니면, 착하지, 착하지 계속 말을 하면 결국 그 말을 들은 무언가가 진짜 착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것을 이용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둘 중에 하나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몸일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착한 아이가 아닌데 커가면서 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가 된 거지. 다시 말해, 착할 수밖에 없는 아이, 청소년, 성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그냥 모든 상황의 정황이 다 그렇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안나가 챙겨주신 간식부터 먹은 다음에 다음 글에서 나의 '착함 콤플렉스'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