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놓아두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선물 받은 스킨답서스에게서

by 김다정

첫 직장의 인연이 이리도 질긴 사람들이 있을까? 하긴 따지고 보면 그건 첫 직장이라기보다는 대학교 갓 졸업한 새내기들을 모아놓은 동아리와도 같았다. 그 질긴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져서, 생일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직장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들 중, 꽤나 골 때리는 분이 한 분 계신데 (좋은 의미로 골 때린다고 하겠다) 그분이 뜬금없이 내 생일에 화분 하나를 선물해 주셨다. 그 화분의 이름은 바로... 아래와 같이 되시겠다. "정말 정말 키우기 쉬운" 스킨답서스. 아 얼마나 키우기 쉽길래 이런 말까지 앞장 세워 붙인 걸까?


IMG_1109.jpg

화분을 키워본 적도 없거니와, 화분 키우기에 별 다른 관심이 없던 나는 어느 날 문득 내 집 한편에 위치해 버린 스킨답서스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IMG_1102.jpg
IMG_0965.jpg
나는 존댓말 하는데 그녀는 반말을 한다

이 녀석과 지낸 지는 어느새 1년. 해가 잘 드는 집인지라 신경 안 써도 무럭무럭 자란 터라, 선물 해준 친구에게도 자랑했더란다. 물만 줬는데, 새 잎이 콩나물 자라듯이 쑥쑥 크던 스킨답서스. 반려 식물을 들이면 이름 하나는 지어준다는데, 여전히 이 친구에게 이름마저 안 지어준 거 보면 애정의 척도가 얼마나 야박했는지 알겠다.


자취집 계약기간이 끝나고 이사가 가까워질 무렵. 스킨답서스도 함께 이삿짐에 올렸다. 함께 한 세월을 버릴 수 없어서 이기도 했고, 나의 무관심 속에도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 이 식물이 못내 대견해서 새 집에서도 함께 잘 지내고 싶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 적응하기도 바쁜데,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홀로 굳건히 자라왔던 스킨답서스에게 쓸 시간은 아예 전무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전 집보다는 해가 조금 덜 들었다. 그래서일까? 스킨답서스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새 집 적응 기간이었니 싶어 언제나 그랬듯이 가만히 두었다. 주말 아침, 우연히 시선에 들어온 스킨답서스는 거의 죽음 직전에 가있었다. 증거 사진 첨부한다.

IMG_1103.jpg
IMG_1104.jpg
이 정도면 거의 죽은 거 아니냐구요...


그래도 같이 산 정이 있는데. 살려야겠다 싶었다. 어쩌다 한 번 눈길 주던 시간을, 어쩌다 두 번으로, 매주 한 번으로, 매일 한 번으로. 그러나 이 스킨답서스는 생명을 다한 것인지 전혀 나아질 생각이 없었다. 이전보다 나는 관심도 더 주고, 물도 더 주고, 더 아껴주는 것 같은데 맥을 추리지 못하는 이 스킨답서스가 못내 미웠다. 전보다 사랑을 더 주는데 너는 왜 좋아지지가 않아.


노랗게 잎이 물들고, 어느 잎은 아예 쪼그라들어 검은색으로 변해버렸다. 노랗게 잎이 물드는 원인, 을 인터넷에 치며 나름의 치료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네가 죽을 때가 됐구나. 잘 가라. 나는 곧장 이별할 생각으로 옥상 구석에 던지다시피 둬버렸다. 마지막 장례식은 꼭 성대하게 치러주 마, 잘 살았다 그동안. 마무리 인사까지 남기며 관심을 아예 껐다. 무관심도 아니었다. 그냥 죽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해라.


그렇게 몇 주가 흘렀을까? 여름이 왔다. 세찬 바람도 불고, 폭풍우도 불고, 장마도 오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도 만나고, 이쯤 되면 세상과 작별을 고했겠지? 싶어 몇 주 동안 보지도 않았던 스킨답서스에게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어느 때보다 크고 긴 잎사귀를 펼쳐내며 너무나도 잘 살아 있었다. 너무나도 파릇하게, 여름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 마냥. 그리고 나에게 얘기하는 듯했다. 너의 무관심이 잠깐 필요했었어. 난 원래 혼자 잘 크잖니.

IMG_1105.jpg 보고 진짜 깜짝 놀랐지 뭐야


사람도 새로운 곳으로 갈 땐 언제나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그 당연한 걸 이 스킨답서스에게도 해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너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너 나름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죽음으로 결말을 지어버린 내가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 미안해 너의 한계를 그냥 지어버려서.

IMG_1106.jpg
IMG_1107.jpg
커지기 시작한 잎사귀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는 스킨답서스는 어느새 작은 화분을 가득 채울 만큼의 무성한 잎을 가져버렸다. 조금 좁아 보여서, 사죄의 의미로 그에게 넓은 집을 주말에 선물해 주었다. 조금 더 넓은 화분, 영양분이 가득한 퇴비를 사고, 물도 잘 머금도 통풍이 잘 되도록 아래 마사토도 깔아주었다.

IMG_1093.HEIC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분갈이한 후 식물과 안녕을 고했다는 글들이 많았다. 집을 옮기는 일이니 식물에게도 분갈이는 참으로 많은 스트레스겠다. 하지만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뿌리는 더욱더 성장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썩게 되어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죽는다고 한다. 스트레스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니 나를 또 용서해 주렴.

IMG_1096.HEIC
IMG_1097.HEIC


자연에게서 배우는 게 참으로 많다. 직장을 옮기고, 집을 옮기고, 이 과정이 아플 때가 많은데 또 돌아보면 그때 배운 걸 토대로 단단하게 뿌리박고 살고 있으니. 분갈이 한 스킨답서스는 아마 한동안 아플 테다.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관심을 섞어 스킨답서스를 살펴줄 테다. 다만 많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IMG_1100.HEIC


작가의 이전글여름을 사랑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