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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Jul 16. 2023

조용히 놓아두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선물 받은 스킨답서스에게서

첫 직장의 인연이 이리도 질긴 사람들이 있을까? 하긴 따지고 보면 그건 첫 직장이라기보다는 대학교 갓 졸업한 새내기들을 모아놓은 동아리와도 같았다. 그 질긴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져서, 생일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직장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들 중, 꽤나 골 때리는 분이 한 분 계신데 (좋은 의미로 골 때린다고 하겠다) 그분이 뜬금없이 내 생일에 화분 하나를 선물해 주셨다. 그 화분의 이름은 바로... 아래와 같이 되시겠다. "정말 정말 키우기 쉬운" 스킨답서스. 아 얼마나 키우기 쉽길래 이런 말까지 앞장 세워 붙인 걸까? 


화분을 키워본 적도 없거니와, 화분 키우기에 별 다른 관심이 없던 나는 어느 날 문득 내 집 한편에 위치해 버린 스킨답서스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존댓말 하는데 그녀는 반말을 한다

이 녀석과 지낸 지는 어느새 1년. 해가 잘 드는 집인지라 신경 안 써도 무럭무럭 자란 터라, 선물 해준 친구에게도 자랑했더란다. 물만 줬는데, 새 잎이 콩나물 자라듯이 쑥쑥 크던 스킨답서스. 반려 식물을 들이면 이름 하나는 지어준다는데, 여전히 이 친구에게 이름마저 안 지어준 거 보면 애정의 척도가 얼마나 야박했는지 알겠다. 


자취집 계약기간이 끝나고 이사가 가까워질 무렵. 스킨답서스도 함께 이삿짐에 올렸다. 함께 한 세월을 버릴 수 없어서 이기도 했고, 나의 무관심 속에도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 이 식물이 못내 대견해서 새 집에서도 함께 잘 지내고 싶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 적응하기도 바쁜데,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홀로 굳건히 자라왔던 스킨답서스에게 쓸 시간은 아예 전무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전 집보다는 해가 조금 덜 들었다. 그래서일까? 스킨답서스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새 집 적응 기간이었니 싶어 언제나 그랬듯이 가만히 두었다. 주말 아침, 우연히 시선에 들어온 스킨답서스는 거의 죽음 직전에 가있었다. 증거 사진 첨부한다.

이 정도면 거의 죽은 거 아니냐구요... 


그래도 같이 산 정이 있는데. 살려야겠다 싶었다. 어쩌다 한 번 눈길 주던 시간을, 어쩌다 두 번으로, 매주 한 번으로, 매일 한 번으로. 그러나 이 스킨답서스는 생명을 다한 것인지 전혀 나아질 생각이 없었다. 이전보다 나는 관심도 더 주고, 물도 더 주고, 더 아껴주는 것 같은데 맥을 추리지 못하는 이 스킨답서스가 못내 미웠다. 전보다 사랑을 더 주는데 너는 왜 좋아지지가 않아. 


노랗게 잎이 물들고, 어느 잎은 아예 쪼그라들어 검은색으로 변해버렸다. 노랗게 잎이 물드는 원인, 을 인터넷에 치며 나름의 치료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네가 죽을 때가 됐구나. 잘 가라. 나는 곧장 이별할 생각으로 옥상 구석에 던지다시피 둬버렸다. 마지막 장례식은 꼭 성대하게 치러주 마, 잘 살았다 그동안. 마무리 인사까지 남기며 관심을 아예 껐다. 무관심도 아니었다. 그냥 죽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해라. 


그렇게 몇 주가 흘렀을까? 여름이 왔다. 세찬 바람도 불고, 폭풍우도 불고, 장마도 오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도 만나고, 이쯤 되면 세상과 작별을 고했겠지? 싶어 몇 주 동안 보지도 않았던 스킨답서스에게 찾아갔다. 그런데 웬걸. 어느 때보다 크고 긴 잎사귀를 펼쳐내며 너무나도 잘 살아 있었다. 너무나도 파릇하게, 여름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 마냥. 그리고 나에게 얘기하는 듯했다. 너의 무관심이 잠깐 필요했었어. 난 원래 혼자 잘 크잖니. 

보고 진짜 깜짝 놀랐지 뭐야


사람도 새로운 곳으로 갈 땐 언제나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그 당연한 걸 이 스킨답서스에게도 해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너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너 나름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죽음으로 결말을 지어버린 내가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 미안해 너의 한계를 그냥 지어버려서.

커지기 시작한 잎사귀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는 스킨답서스는 어느새 작은 화분을 가득 채울 만큼의 무성한 잎을 가져버렸다. 조금 좁아 보여서, 사죄의 의미로 그에게 넓은 집을 주말에 선물해 주었다. 조금 더 넓은 화분, 영양분이 가득한 퇴비를 사고, 물도 잘 머금도 통풍이 잘 되도록 아래 마사토도 깔아주었다.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분갈이한 후 식물과 안녕을 고했다는 글들이 많았다. 집을 옮기는 일이니 식물에게도 분갈이는 참으로 많은 스트레스겠다. 하지만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뿌리는 더욱더 성장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썩게 되어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죽는다고 한다. 스트레스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니 나를 또 용서해 주렴.


자연에게서 배우는 게 참으로 많다. 직장을 옮기고, 집을 옮기고, 이 과정이 아플 때가 많은데 또 돌아보면 그때 배운 걸 토대로 단단하게 뿌리박고 살고 있으니. 분갈이 한 스킨답서스는 아마 한동안 아플 테다.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관심을 섞어 스킨답서스를 살펴줄 테다. 다만 많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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