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근무초소에서도 유축은 한다.
출산휴가 90일 후 복귀하자마자 구제역이 터졌다. 축사 앞 컨테이너에는 마을 주민과 한 팀이 되어 2교대로 밤을 지킨다. 근무조에는 임산부도, 출산한 직원도 얄짤없다. 오늘은 새벽근무다.
컨테이너 안은 미지근한 열기로 가득하다. 커피믹스를 두 잔이나 마셨지만 새벽이 되니 눈꺼풀이 무겁다. 딱히 할 것도 없다. 한쪽에서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라디오가 먼 데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다. 졸음과 한기가 엉켜있는 공간, 축사 주인아저씨가 빼꼼 문을 연다. 손에는 삶은 계란과 귤 몇 개가 들려 있다. 출출했는데 반갑다. 귤껍질을 까며 라디오를 듣다가 아저씨들이 주고받는 말들에 귀가 열린다. 소 키우는 이야기는 나름 재미있다. 소가 소를 낳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초보엄마는 내가 소가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도 때론 들었지만 소의 출산 이야기를 듣자 하니 모성애 앞에서 숙연해진다.
- 소도 스트레스받으면 젖이 잘 안 나와.
- 사람이랑 똑같은데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 나 집에 잉어즙 있는데 갔다 줄까? 모유 잘 나와 허허허
출산한 지 3개월 되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모유이야기로 흘러간다. 내 유축 인생, 축사 아저씨가 컨설팅해 주신다. 그때, 차오른다. 묵직하다. 아프다.
- 아저씨, 저 유축 좀 하고 올게요.
- 뭐?
- 차에 가서 유축 좀 하고 올게요.
- 응? 추운데?
- 모유 짜야해서요.
- 아, 아이고, 얼른 가.
차 안으로 뛰어들어 패딩을 벗고,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를 가슴에 댄다. 천천히 리듬이 새겨지고, 투명한 관을 타고 흐르는 뽀얀 아기밥. 밖은 얼어붙은 세상이지만 유리병 속은 따뜻하다. 엄마는 오늘의 할 일을 해냈다. 냉장고보다 추운 차 안에 젖병을 두고 컨테이너로 돌아간다.
컨테이너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공기에 볼이 얼얼했지만 마음 한편은 따뜻했다. 그날 하루는 고단했지만, 오늘도 내 할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우울함을 살포시 가려준다. 얼어붙은 새벽을 지나, 아주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 그 모유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이제 16살이다. 육아는 결국 나를 돌 보는 일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