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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Nov 24.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6월 12일 아버지의 수술(2)

아버지의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이동한 후,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긴장감이 풀려버렸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니 경직되었던 몸도 느슨해져 버린 것이다.

긴장감라는 녀석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를 보고 나온 그 당시 나의 마음은 이러했다.


'아... 됐다... 다 끝났다... 이제 의식을 회복하고 나아지길 기다리면 되겠구나...'


딱 저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다 털고 일어나기만 하면 되겠구나.

아버지는 곧 건강해질 수 있겠구나.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병실로 가고 그렇게 조금 있으면 병원을 뒤로하고 퇴원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하며 삼촌댁으로 향했다.

삼촌댁에서 하루 더 머물고 다음날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 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잊었던 식욕이 나에게 찾아왔다.

아버지가 수술하는 동안 나와 동생은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픈지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자 그때서야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한 끼를 굶어도 정말 예민하게 구는 내가 배고픔도 잊은 채 아버지의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 동생, 삼촌과 숙모는 근처 중식당으로 향했다.

중식당에 도착한 나는 배도 고팠지만 갈증이 너무 났다.

심적인 갈증도 엄청났던 것 같다. 

나를 억눌렀던 무거운 감정을 해소시키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시켜 벌컥벌컥 마셨다.

그 맥주 한잔이 정신이 없던 나를 확 깨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마시고 삼촌댁 가서 한숨 푹 자고 낼 아버지 뵙고 집에 가면 딱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당에서 시킨 음식과 맥주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정말 어떤 맛이 나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밀어 넣었다.

마음이 조금 놓이니 아버지 생각은 뒷전이고 그저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배가 부르니 나의 몸은 더 풀어져 버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삼촌댁으로 돌아와 쉬고 있을 그때였다.

저녁 한 6시 45분쯤 되었을까?

핸드폰이 울리고 익숙한 삼성병원의 번호가 내 휴대폰 액정에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보호자분 어디세요?! 아버지가 지금 출혈이 발생해서 재 수술을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빨리 오세요!"


전화를 받은 내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다.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신 내가 순간 원망스러웠다.

내가 미쳤었구나.

정말 멍청하게도 긴장의 끈을 놓고 잇었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아까웠다. 지금 당장 아버지께 가야 했다.


"네 십 분이면 갑니다. 지금 당장 갈게요."


그렇게 대답을 하고 옆을 보니 이미 삼촌은 옷을 입고 준비 중이었다.

순식간에 나와 동생은 삼촌차를 타고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그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보호자분 지금 상황이 급해서 일단 먼저 수술하고 동의서 받도록 할게요. 오시면 중환자실 앞으로 오세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십 분도 안되어서 도착한 병원.

나와 동생은 헐레벌떡 중환자실로 가서 벨을 눌렀다.

동생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의 심장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 한분이 나오면서 말했다.


"아 그래도 빨리 오셨네요. 이제 아버지 수술실로 이동하실 거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가 누워있던 베드가 중환자실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마주한 아버지의 얼굴.

그리고 짧은 시간, 나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이 또다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게 혹시 마지막일까? 이렇게 갑자기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오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수술실로 이동하고 딩동 소리와 함께 문자 메시지가 왔다


[ooo님이 대기실에서 수술실로 입실하였습니다.]


두 번 다시는 보기 싫었던 문자가 또다시 나에게 날아왔다.

그렇게 아버지는 수술실로 다시 들어갔다.

아 이제는 다 끝나는구나라고 안심한 내가 참 바보 같았다.

간절함이 없어지니 바로 이런 상황이 터져버리고야 만 것이다.

아버지의 재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은 무서웠다.

그리고 시간이 더디게 갔던 첫 번째 수술과 달리 두 번째 수술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안심을 하고 걱정이 없이 밥을 먹고 맥주를 먹어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더 죄책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의 미련한 행동이 이러한 모든 결과를 초래한 것만 같았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지나가면 그때 그 마음을 잊어버린다고 들 한다. 

그런데 난 단 몇 시간 만에 잊어버린 것이다.

단지 수술이 끝났을 뿐인데...

난 순식간에 그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과 나의 간절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란 놈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순식간에 잊은 채 그저 본능을 채우기 위한 행동을 한 나 자신이 참 미웠다.

그리고 간사한 나는 또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참 양심도 없는 행동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다.

그저 죄송하다.

한 번만 더 살려달라.

나의 미련한 모든 행동을 용서해 달라며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그렇게 기도를 하며 2시간 정도 흘렀을까?

딩동 하는 소리가 내 핸드폰에서 울려댔다.


[ooo님 수술이 종료되어 중환자실로 이동하십니다.]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풀렸다.


'아... 다행이다... 수술을 잘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오는구나... 아... 감사합니다'


잠시 후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던 나와 동생 앞으로 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지나갔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지만 돌아가시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들어가고 잠시 후 복도 끝에서 교수님이 걸어왔다.

수술을 마치고 많이 지쳐 보이는 교수님이 나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재 수술도 다행히 잘 되었고 출혈도 잘 잡았어요. 이 심장 수술을 하면서 잘랐던 가슴뼈에서 출혈이 발생한 거여서 다행히 그 부분에 석고 물질 같은 것으로 잘 발라서 출혈은 잘 잡았습니다. 뭐 이제는 별일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는 근처에 있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와의 대화를 마친 선생님은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나와 동생도 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병원을 빠져나왔다.

하루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두 번 왔다 갔다 한 기분이었다.

그날은 정말 힘든 하루였다.

그렇게 다시 삼촌댁으로 돌아왔고 난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며 밤을 보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었다.

제발 내일이 오면 의식이 회복되어 눈을 뜨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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