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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돼지고기

by 김동해

타이베이로 돌아오면 나는 또다시 채식주의자 비슷하게 변해간다. 잇몸 건강을 생각해서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 방법으로 닥치는 대로 고기를 먹기로 맘을 먹지만, 한번 먹고 나면 생각이 변하고 만다.

하루는 어묵찌개를 끓여 먹을 재료들이 충분했지만, 돼지고기도 좀 넣어서 영양을 줄 거라고 샤브샤브 용으로 얇게 썰려진 삼겹살 부위를 사 왔더랬다. 한두 조각 넣어 억지로 먹어줬다. 다음날 점심때는 남은 걸로 고추장 불고기를 해 먹었다.

내가 산 것은 대만산 돼지고기다. 대만산 돼지고기의 비계부위는 어째 아무리 익혀도 고슬고슬해지지 않는 촛농 같은 느낌이 좀 있다. 보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맛이 그렇다. 대만 돼지고기의 비계부위는 내게 스페인 까미노 길에서 영 친해지지 못했던 하몽 맛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했던 하몽이 내 입맛에는 목구멍에 낀 가래 같은 맛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지. 그 맛을 견뎌가며 단백질이랍시고 돼지고기를 먹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난 소고기는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소고기로 좀 바꿔봐야겠다고 맘먹었다. 며칠 전에 수진 씨를 만나 어느 한식당에서 뚝배기 소불고기를 먹었었는데, 그렇게 요리하면 제법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 씨가 추천했던 대만의 그 한식당은 양배추, 당근, 양파 등의 야채와 소고기를, 마늘과 간장 간에 물기 좀 자작하게 해서 볶아 뚝배기에 담아내왔다. 당면도 조금 있었다. 간장의 달짝지근한 맛이 제대로 한국음식 맛이 났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소불고기를 만들었을 때, 고기는 잡내가 났다.

'역시, 대만에서는 그냥 채식을 해야 하나?'

소고기도 실패! 아, 난 대만에서 '노력해서 고기 먹기'를 매번 실패하고 만다. 내 요리 솜씨 탓인가, 대만의 고기가 이상한가?


대만에서 뭔 행사에 참가하거나 할 때, '점심으로 뭘 준비해 드릴까요?' 하는 질문 항목이 꼭 있는데, 나는 고민 없이 채식에 체크를 한다. 고기 도시락을 한번 먹어보고는 식겁을 했기 때문이다. 고기는 그냥 자기 자체로 맛있는 맛을 내는 재료인데, 대만의 조리법은 고기를 어떻게 괴롭히는 것인지, 맛난 재료를 가지고 이상한 맛을 내놓는다.


다행히, 최근에 먹을만한 돼지고기를 찾아냈다. 집 근처의 요우판(油飯) 파는 집인데, 곁들이는 반찬으로 돼지고기 속 내장 여러 부위를 판다. 돼지 입, 소장, 내장, 간, 허파 등등 부위별로 시켜도 되지만, 여러 부위가 적당히 섞인 것으로 먹으려면 헤이바이치에(黑白切)를 시키면 된다. 헤이바이치에(黑白切)는 '맘대로'라는 뜻으로, 사장님이 아무 부위나 내키는 대로 담아 준다. 이 집 돼지고기 내장은 뜨거운 물에 삶기만 해서 내오는 것인데도 맛있다. 대략적인 맛이 우리나라 수육 같은 느낌이다.

이게 질리면, 노력해서 고기를 먹는 또 다른 방법으로, 샤브샤브도 있긴 하다. 가성비 좋은 스얼구어(石二鍋)나 치엔뚜르쓰슈아슈아구어(錢都日式涮涮鍋)는 매번 줄을 서야 한다는 귀찮음을 견뎌야 하긴 하지만.

샤브샤브도 고기를 끓는 물에 담궜다가 소스에 찍어먹는 형태잖아? 아무 양념을 하지 않은 고기들은 다 맛있는데, 대만의 조리법으로 요리된 고기요리는 맛이 없다. 나는 대만의 고기 조리법에 불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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