敷衍[fū yǎn]

한국어 뜻과 중국어 뜻이 달라요

by 김동해

중국드라마 《미암지화(微暗之火, 2024)》가 너무 달콤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원작인 구월희(玖月晞)의 인터넷소설 《소남풍(小南風)》을 읽기 시작했다. 남주 조루어(周洛)가 6년 만에 칭쉐이쩐(清水)으로 돌아오며 이웃주민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푸옌(敷衍)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래, 푸옌(敷衍) 이 단어 참 재미있지 하고 오늘은 이 단어를 소개하기로 한다.

문장은 이랬다.

"조루어(周洛)는 서먹서먹한 표정으로 몇 번 노력했지만 얼굴에 푸옌(敷衍)의 미소도 끄집어낼 수 없었다. (周洛表情生疏,幾經努力,也沒能在臉上扯出一個敷衍的笑容。)"


중국어 敷衍(fū yǎn)을 소개하려고 이 한자의 한국어 독음이 어떻게 되나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대부부의 한자를 중국어로 먼저 배워서, 한국어 독음을 잘 모른다.) 우리나라 한자 발음으로 부연(敷衍)으로 읽힌다니!

우리나라 말 부연(敷衍)은 예를 들면, "앞서 제시한 내용을 조금 더 부연설명하겠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쓰여서, '논리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설명을 보태다'의 뜻이다. 중국말 푸옌(敷衍)과 그 뜻이 완전히 다르다!

중국말 푸옌(敷衍)은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하는데 성의가 없거나 겉으로만 대강 어물쩍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성의 없이 대충 처리하다', '형식적으로 처리하다', '건성으로 대응하다'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他只是敷衍了幾句。(그는 몇 마디로 대충 넘겼다.)"나 "敷衍工作(일을 건성으로 하다)" 등으로 쓰여 책임 회피, 불성실한 태도, 피상적인 대응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왜 같은 한자인데 의미가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AI에게 물어봤다. 이건 한자어가 서로 다른 언어 공동체 안에서 ‘의미 이동(semantic shift)’을 겪었기 때문이란다. 한국어 '부연'과 중국어 '敷衍'은 동일한 한자에서 출발했다. 敷는 펼치다, 널리 하다의 뜻이고, 衍는 이어지다, 확장되다의 의미다. 그런데, 의미의 방향성이 서로 반대에 가깝게 분화되었다. 한국어에서는 의미가 ‘설명 확장’ 쪽으로 정착한 반면, 중국어에서는 ‘형식적 대응’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화되었다.

중국어 敷衍도 옛날에는 “말이나 내용을 펼쳐 이어 설명하다”로 한국어 부연에 가까운 뜻이었단다. 그런데 이 표현이 근대·현대에 들어오면서 “필요 이상으로 말만 늘어놓다”, “핵심 없이 얼버무리다”, “형식적으로 대응하다”로 부정적 평가의 의미가 붙어 “성의 없이 대충 처리하다”의 뜻이 주된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즉, 말만 많음 → 핵심 회피 → 무성의라는 의미 연쇄가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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