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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n 20. 2024

세 번째 집단심리상담

    집단상담 3번째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클레이 색상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하나만 골라야 한다. 나는 분홍색과 보라색 중에서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좀 더 우울한 보라색을 선택했다. 그럴 조물딱 거리면서 상대와 근래에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5분씩 이야기를 나누란다. 나는 클레이를 오른손 왼손으로 바꿔가며 한 손으로 꽉 눌러 잡아 모양을 일그러뜨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의 클레이 그 모양 그대로를 하얀 종이 위에 놓고 싶은 모양으로 놓는다. 그리고, 그걸 보고 세 가지 단어를 말해본다. 나는 내가 조물딱 했던 클레이 덩어리를 하얀 종이의 가운데에 세워 붙이고는 ‘고독, 한 사람, 나’라는 세 단어를 말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다. 내가 스트레스 상황을 이야기하며 꽉꽉 눌러쥐었던 클레이는 내 스트레스를 담고 있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간직한 클레이의 형상이 내게 떠오르게 한 그 세 단어는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자기 마음에 들게 고치라고 했다. 다양한 색의 클레이와 색연필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초록색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오고 거기서 초록 잎이 돋아나도록 했다. 그게 나를 외부와 연결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쪼물딱 거렸던 덩어리는 나 자신인데, 거기다 눈과 입을 달고 벚꽃 같은 예쁜 머리카락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도록 두 팔을 달았다. 그렇게 했지만,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토색을 집어 들고 다시 뭉뚱한 사람 몸뚱이를 만들고 보라색 내가 서 있는 앞에 세웠다. 눈은 나를 바라보도록 붙였다. 노란색 머리카락을 올려줬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그 작품이 맘에 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야 내 마음을 알겠는 것이다. 나는 혼자인 것이 너무 고독한 것이다. 누군가 나를 바라봐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혼자 사는 일이 자유로워서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나만 바라봐주는 짝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큰 종이에 풀죽과 물감으로 미술활동을 했다. 손바닥에 풀을 짜서 올리고, 그 위에 물감도 짜 올린다. 그리고 손바닥을 종이에 휙 문지르거나 철퍽철퍽 두드려 마음 내키는 대로 작품을 만든다. 

    나는 밝은 색들로만 짜서 손바닥으로 빠르게 휙휙 큰 원을 그려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흰색을 발견하고는 이미 여러 가지 색상이 있는 곳에 덧 문질렀더니 색깔들이 예쁘게 섞여서 참 좋았다. 역동성 있고, 칼라풀한 내 작품이 지극히 마음에 드는 것이다. '아, 이걸 내가 만들어냈단 말이야?' 하면서. 


    그런데…!

    상담사는 이걸 벽에 붙이고는 자기 작품을 보면서, 뭐가 보이는지, 무슨 생각이 드는지, 이 그림이 말을 한다면 나에게 뭐라고 말할지를 종이에 쉬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10분간 적어보라고 했다. 

    그림 앞에 앉아 방금 마음에 든다고 했던 그림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온통 어두운 생각뿐이었다. 내 그림 속에는 어째 화가 난 동물의 얼굴이 있었고, 색깔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어째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쓴 글을 읽으라고 했다. 그런 후에 그 글 속에 있는 긍정적인 단어를 찾아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다. 그리고, 방금 동그라미 친 긍정적 단어를 이용해서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네가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너에게 따뜻한 포옹을 보낸다.”

    내가 쓴 글은 온통 어두운 이야기뿐이었는데, 그 안 어디에 긍정의 단어들이 들어 있어서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신기했다.


    오늘도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나는 혼자라는 게 자유로워서 너무 좋은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은 몰래 외로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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