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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l 05. 2024

두 번째 집단 심리상담

    비가 좀 많이 왔다. 리처드와 죠수아가 불참했다. 


    첫 번째 시간은, 원 모양이 되도록 실 끝을 묶은 털실을 가지고 rubbing기법으로 사물을 그려내는 활동이다. rubbing, 이 단어를 기억하는 것은,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기 때문에 물어봐서 철자까지 확실히 기억이 난다. rubbing은 문질러서 탁본하는 기법이다. 동전 위에 얇은 종이를 올려놓고 연필로 쓱쓱 문질러서 동전을 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기법이다. 

    다섯 명이서 두 팀으로 나눠서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콜롬비아인 메모와 둘이 한 팀이 되었다. 나머지 셋이 또 한 팀이 되었다. 

    팀원이랑 협동해서 나무를 그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소리도 내면 안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다음에는 집을, 대만지도를 그리라고 했다. 아, 오, 이 정도의 소리는 내도 된다고 조건이 바뀐다. 또 사람을 그리란다. 말은 해도 되지만, 눈을 감고서 하란다. 마지막으로는 대만과 관련한 어떤 것이든 그리고, 상대팀으로 하여금 뭘 그렸나 맞춰보게 했다. 

    그냥 털실로 모양을 내서 탁본하는 것도 아니고, 끝이 묶인 원모양의 털실로 이런 사물의 모양을 만들고 탁본을 뜨는 것이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재밌기는 했다.


    그리고는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과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고르란다. 두 팀이 우연히도 똑 같이, 눈을 감고서 그린 사람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았고, 나무 그림을 가장 안 예쁜 그림으로 골랐다. 

    이번에는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던 그림을 마음에 들게 꾸며보란다. 

    "우리, 몬스터로 꾸미자. 여기를 얼굴로 꾸미자." 내가 제안했다.

    집단상담을 하면서 느끼는데, 나는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어떻게 하자고 먼저 제안하는 편이었다.

    "그럼 여기는 몸뚱이." 메모는 바로 호응해 준다. 

    눈알 색깔이 다른 괴물을 그렸는데, 다 그리고 보니 너무 귀여워져 버렸다. 

    "메모, 난 몬스터를 그리고 싶었는데, 이건 너무 귀엽잖아?" 

    발견하는데, 나는 싫은 그냥 넘기는데 너그럽지가 않다. 이깐 미술활동 덜 마음에 든 들 뭐 어떠랴마는.

    내가 좀 덜 마음에 들어 하자, 메모가 중간에 눈을 하나 더 그려 넣어서 세 개의 눈을 만들고, 입도 하나 더 그려 넣는다. 결정적으로 메모가 연두색 크레용으로 두상 부위에 선 몇 개를 추가했더니 신비감이 느껴졌다. 메모는 정말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와우! 메모, 이제야 몬스터스러워졌어! 정말 마음에 들어."


    그려진 대만 지도를 펼쳐 놓고 왜 대만에 왔는지도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메모는 코로나로 수입이 자꾸 줄어들자,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대만 장학금을 신청했는데 다행히 그걸 획득하게 되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단다. 호주인 메튜는 친척이 대만에 살고 있는데, 너무 좋다며 자기 보고도 오래서 왔단다. 와보니 정말 마음에 든단다. 

    이 집단 심리상담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는 아주 조금만 알아들었다. 


    두 번째 시간은, 여러 가지 문이 그려진 카드를 주더니, 당신이 어떻게 생긴 문을 열고 대만으로 온 것인지, 카드를 하나 고르고 그걸 따라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도 그리라고 했다. 

    나는 철조망처럼 생긴 문 뒤에 아이하나가 서 있는 장면의 카드에 눈길이 머물렀다. 문 뒤에 있는 아이가 나처럼 처량해 보여 그걸 선택할까도 싶었지만, 철조망 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카드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시 카드를 뒤적이다 딱 내 마음에 드는 문을 발견했다! 석재 사자상이 문 앞에 버티고 있고, 뒤에 나무로 된 문이 빼꼼 열린 그림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장면은 밝은 색 3가지로 추상적으로 바탕을 표현했다. 하늘에 새 두 마리가 날아다니고, 저 멀리 집이 한 채 보이고, 나는 홀로 하늘을 향해 팔을 뻗쳐 나풀나풀 걷고 있다.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 싶어 남들은 어떻게 그리나 하고 살펴보는데, 다들 뭔가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고 있다. 

    "선생님, 뭔가 구체적으로 그려야 하나요? 이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해도 되나요?"

    "네, 추상적으로 표현해도 돼요. 뭔가 구체적인 것으로 다시 그리고 싶으면 종이를 하나 더 줄게요. 이 카드들 중에서 참고해서 그릴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세요." 

    문을 열면 보이는 장면일만한 카드 사진을 참고하라고 준다. 나는 그 카드들을 넘기면서, 완벽하게 느낀다. 그런 구체적인 것들은 내가 보고자 하는 어떤 장면이 될 수 없음을. 어떤 아름다운 장면이라도 눈앞에 딱 보이는 구체적인 것은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밝은 어떤 느낌이지 구체적으로 보이는 어떤 물질이 아니다. 


    그리고는 그 문과 문을 열어서 보이는 풍경에 대해 설명해 보란다. 

    "나는 이 문을 열고 대만으로 왔어요. 문 앞에 서있는 돌 사자상은 마법의 힘이 있어요. 이 문을 통과하면 마법처럼 모든 게 바뀌죠. 이건 문을 열면 보이는 장면이에요. 나는 대만에 와서 밝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밝은 색으로 행복한 느낌이 나도록 그렸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아가씨 훼이루는 나와 반대다. 그녀는 대만에 온 후로 모든 게 힘들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은 비가 오고 있다. 그녀는 비 오는 타이베이를 아주 싫어한다. 그녀는 타이베이 사람들도 싫어한다. 내게는 어느 도시에서 만난 사람보다 친절하게 느껴지는 타이베이인이 그녀는 불친절해서 싫단다. 

    '우리 같은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거 맞니?'

    

    나는 사실 미술 집단심리상담을 신청할 때, '심리상담'을 기대한 것이 아니고, '미술활동'에 참가하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미술활동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다음 시간에는 또 어떤 내 모습을 발견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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