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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l 27. 2024

몸으로 보답하게 해 주세요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논문자격시험공부를 시작하고, 학기 중에 마저 다 공부해서, 학기가 끝날 때쯤 자격시험을 볼 계획이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읽어야 할 논문들을 찾아서 폴더 안에 다 저장해 뒀다. 책은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네댓 권 한국으로 들고 왔다. 

    여름방학을 보내러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계획이 거창했다. 논문자격시험공부를 하느라 책이며 논문들을 읽을 때, 곧장 논문의 제2장 문헌 탐구 부분을 써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오자, 어째 한 글자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 달만 쉬지 뭐. 7월부터 하는 거야.' 

    그러고는 맘 편히 쉬었다. 달은 6월에서 7월로 바뀌었지만, 내 심사는 조금도 공부하고 싶은 쪽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7월부터는 하루하루가 조금 조마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7월의 반이 지나갔을 때,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는 것이다. 

    '그래, 지도교수 카드를 써먹어야겠다.'

    

    박사생이 교수에게 응석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건 참 체면 안 서는 일이란 걸 알지만, 그것도 이미 귀엽지 않은 내 나이에...  알지만, 나는 졸업해야겠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교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한국으로 돌아오니 제가 무적 게으름뱅이가 돼서, 지금껏 한 글자도 보지 않았어요. 교수님께 학습 진도를 보고하는 압박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매주 보고 드려도 될까요? 교수님은 그냥 제 문자를 받아만 주시면 돼요."

    그리고 차이 교수가 아직 책 명단을 안 보내주는데, 재촉해야 할지 그냥 착하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물었다.  

    책명단과 관련해서는 내 지도교수는 자기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이건 내 지도교수의 스타일이다. 내 지도교수는 학생들을 참 편하게 해 준다. 학습 진도 보고에 대해 내가 기대한 답은 '하오(好, 오케이)'였는데,  생각지 못한 긴 문장이 왔다. 

    "여름방학 중에라도 나와 토론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통지(通知) 해 줘."

    '뭐야 이건?' 

    이 문장 어디에, 내가 물은 것에 대한 답이 있지? 보고를 해도 된다는 거야? 하지 말라는 거야?  교수는 왜 통지(通知)라는 단어를 썼지? 내가 통지(通知) 할 처지가 되나?  (중국어의 통지(通知)는 단순히 '알려주다'의 뜻으로만 보면 안 된다. 이건 교수가 학생에게 '알려주다'일 때는 쓸 수 있지만, 학생이 교수에게 '알려주다'일 때 쓰면 좀 예의 없는 것이 된다.) 이건, 학습 진도 보고 같은 건 받기 귀찮으니까 하지 말라는 소린가?

    

    요새 내 지도교수가 대답을 어찌나 애매하게 하는지 아주 미쳐버리겠다. (우리 학생들은 지도교수와 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라인은 대만인들이면 누구나 쓰는,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핸드폰 문자 주고받는 앱이다.) 원래 내 지도교수의 스타일은, 내가 아무리 길게 물어도,  '오케이'를 나타내는 이미지로 퉁쳐버렸다. 뭐, 그래도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것이어서,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얻은 거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지도교수가 '예스'라고 하는지 '노'라고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답문이 OK나 NO로 분명하지 않을 때, 이건 무슨 뜻인가 하고 지도교수의 뜻을 짐작하는 일이 나는 괴롭다. 난 잘 짐작을 못 하겠기 때문에. 내가 여성을 지도교수로 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성들의 커치*(客氣, kèqì) 한 말을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데, 내 지도교수가 어째 여성처럼 애매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밤에 누워 중드를 보다가 '아악!'하고 경악한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서스펜스 형사물인데, 신참 형사가 선임 형사한테 사건의 경과를 보고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이럴 때 보고한다는 단어가 훼이빠오(匯報[huìbào])이다. 내가 오늘 낮에 학습 진도를 보고하겠다고 하면서, 지도교수에게 回報를 처넣은 게 떠올랐다. 이건 발음은 같지만, '보고하다'가 아니라  '보답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는 교수에게 '내가 당신에게 보답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한 꼴이 된 것이다. 


    내게 훼이빠오(回報)라는 단어가 어째서 참 깐까**(尷尬, gāngà)한 단어 인가 하면......  

    '우이회이빠오, 이션쌍쉬(無以回報, 以身相許[wú yǐ huíbào, yǐ shēn xiāng xǔ])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보답할 길이 없어, 몸으로 허락하다'는 뜻이다. 나는, 단어 훼이빠오(回報)를 만나면, 곧장 이 이션쌍쉬(以身相許)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학습 진도를 훼이빠오(huibao) 하겠다고 했으니, 내 교수는 回報가 아니라, 匯報로 알아들었겠지만, 이션쌍쉬(以身相許)를 연상시킨 나는 혼자 깐까(尷尬)해한다. 



*커치(客氣, kèqì) :1. 예의가 바르다. 정중하다. 친절하다.  2. 겸손하다.

**깐까(尷尬,  gāngà) : 1.(입장 따위가) 난처하다. 곤란하다. 거북하다. 곤혹(困惑)스럽다.  2.(표정·태도가) 부자연스럽다.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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