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게 될까 봐, 그때 돼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일이 생길까 봐, 고모의 돌봄이 투입된다. 소현이가 학원에 다니는 수학, 과학, 영어는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고, 고모는 수행평가를 준비시켜 주고, 학원에 다니지 않는 과목의 필기시험을 대비시켜 준다.
소현이의 기말 성적표를 보자니, 국어는 참 가망이 없다. 고모 자신도 국어 과목에는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영어를 같이 공부하는 게 효과가 좋을 것 같아, 이제부터는 영어 공부도 같이 하기로 한다.
"어제 몰랐던 단어, 기록해 놓은 거 읽고 뜻을 말해봐."
"cause, 야기하다. 그런데 고모 '야기하다'가 뭐야?"
"야기하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그런데 어떻게 외웠어?"
"영어학원에서 cause가 야기하다래. 그래서 그냥 외웠어."
오 마이 갓!
역사 공부는 밤마다 한 챕터씩 공부한다. 역사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역사 교과서로 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맞을지도.
미국의 남북 전쟁을 공부하던 중에 교과서에서 소현이를 헛갈리게 하는 문장을 만난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농장 경영이 발달한 남부는 -중략- 자유 무역과 노예제를 옹호하였다. 반면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중략- 보호 무역과 노예제 확대 반대를 주장하였다.>
"고모, 보호무역과 노예제 확대를 반대했다는 말이야?"
"남부는 자유무역이라잖아. 북부는 보호무역을 주장했겠지.'보호무역'을 주장, '노예제 확대 반대'를 주장, 이런 뜻이야."
어, 그런데 가만 보니 위 문장과 대비시켜서 볼 능력이 안 되는 소현으로서는 참 헷갈리게 쓰여있다. 교과서 쓰는 사람은 <보호 무역을 주장하고, 노예제 확대를 반대했다.>, 라고 적었어야 했다.
"이건 좀 헛갈리게 적어놓긴 했네. 이건 교과서가 많이 잘못했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네가 똑똑하다고 칭찬해 준다.
미국 독립을 공부하면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식민지 대표들은 다시 대륙 회의를 열어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였다.>는 문장을 만났을 때다.
"고모, 총사령관이 뭐야?"
"대장 같은 거야."
"워싱턴을 대장으로 임명했다는 소리가 뭐야?"
"워싱턴을 대장으로 임명했다고."
"워싱턴이 도시 아니야?"
"여기서 워싱턴은 사람 이름이야."
워싱턴이 사람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르는 소현으로서는 이 정도 문장만 만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역사 공부는 전날 자기가 한 필기를 보고, 자기 말로 설명을 해내는 복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소현이는 자주 교과서와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제니 방적기, 제임스의 와트 증기 기관~"
"잠깐, 뭐라고?"
"제임스의 와트 증기 기관."
"제임스 와트까지가 사람 이름이야.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라고 해야지."
"~~~ 금, 구리, 아연, 고무를 수입했다."
"지금 식민지하고 있잖아. 수입은 돈 주고 가져가는 거고. 얘들은 돈 안 주고 뺏어가는 거라고. 수탈이라고 해야지."
고모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날마다 이 문구를 외치게 한다. 소현이는 그렇게 믿고 싶은 때문인지, 조금 수줍어하면서 외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똑똑해지고 있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지만, 사실 고모는 믿는다, 소현이가 날마다 똑똑해질 거란 것을. 왜? 고모도 안 똑똑해서, 안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습득하는지 겪어 알고 있으니까. 그런 고모가 가르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