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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수업료 협상

by 김동해

학교 친구 로빈이 한국어 과외 자리를 하나 물어다 줬다. 거의 십 년 가까이 돈벌이를 안 하고 살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돈벌이하러 일터로 나서는 긴장 세포가 완전히 퇴화해 버릴 것 같은 위기를 느낀 시점에 생긴 일자리라 기분이 좋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뜻 받아들여졌다.

한국문화의 발전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나 같은 생초보에게도 한국어 과외자리가 다 생긴다. 국력은 성장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얼마를 받아야 되는 거지? 한국어 과외 경력이 있는 대만 친구에게 물어보니, 학생이 배우러 오면 시간당 500원(한국돈 2만 원), 선생이 가르치러 가면 700원(2만 8천 원)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건당 계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언어학습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달 치로 수업료를 책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 면대면 수업을 하고, 한 번은 전화통화 수업을 하고, 매일 숙제거리를 주고 검사하는 식으로 진행해야겠다 싶었다. 한국어 과외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해 낸 것이 참 기특했다. 이런 게 연륜이 만들어주는 은혜로움 아니겠나.

처음 하는 한국어 과외라서 너무 많이 받기도 뭐 했고, 그렇다고 법정 시급의 돈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까짓 껏 올려서 잡았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는 좀 많다 싶게 느껴지는, 1개월에 4,500원(18만 원) 받을 작정을 했다. 하지만,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도 상당한 낭비여서 그 돈이 기껍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깟 돈을 벌겠다고 면대면 수업 1시간을 위해 오고 가고 총 3시간을 쓰고, 30분 전화 수업을 하고, 매일매일 숙제거리를 주고 검사하자니, 차라리 안 하고 말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로빈이 소개했으니 일단은 만나봐야 했다.


내 학생이 될 아가씨는 101 빌딩 근처에서 요가복 파는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101 빌딩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그녀는 아주 예쁜 젊은 아가씨였다. 나는 한국어 과외를 처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와 수업시간이며 수업료를 협상을 하는데 사실 좀 긴장이 됐다.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더 긴장이 됐다.

"당신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싸게 해 드릴 수 있어요.”

나와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좀 멀어서, 그녀도 내가 있는 곳까지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녀는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며 지하철 역 어디 어디가 딱 중간이 아닐까란다.

“그건, 누구 하나도 편한 방법이 아니에요." 내가 반대의견을 낸다.

‘당신이 편하고, 내게 돈을 많이 주던가, 내가 편하고, 내가 돈을 덜 받을게.’ 내 속마음은 이랬다.

“내가 가면 얼마나 싸게 해 줄 수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3000원(12만 원) 어때요?”

그녀는 단박에 좋단다. 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훨씬 이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싸도 너무 쌌다. 한 번에 1500원(6만 원)씩이나 깎아버리다니. 정말 나의 멍청에 한숨이 나왔다. 얼마까지 깎아주면 그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을까 상대의 심리를 좀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녀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할 수 있는 회화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에 집에 와서 그녀에게 적합한 교재를 만든다고 거의 하루를 소비했다. 재밌기는 했지만, 3000원(12만 원) 벌자고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좀 기껍지 않았다.

'좀 많이 불렀어야 했는데....'

한국어 선생이 되기 위해 나도 그녀에게 수업료를 내는 셈 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한국어 가르치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능력 중에 하나니까.

'학생 실력이 일취월장하면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서겠지?' 이런 달콤한 상상을 하며 오늘의 멍청한 협상을 잊어버리기로 한다.

조금 우스운 것은, 실컷 중국어 가르치는 공부를 하고서는, 어쩌다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한다니,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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