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老舅)

by 김동해

감독 : 콩얼꺼우(孔二狗, kǒngèrgǒu)

남주: 구어징페이(郭京飛, guōjīngfēi)

여주: 왕지아지아(王佳佳, wángjiājiā)

방영 횟수 :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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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남자배우 궈징페이(郭京飛)가 주연한 최근 드라마 하나 소개한다. 이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좀 슬픈 내용이 많은데, 그걸 코미디적 요소로 표현해서 여운이 더 길게 남는다. 희극으로 분류되어 있다.

드라마 제목 라오지어우(老舅)는 조카가 외삼촌(舅舅)을 '우리 외삼촌'으로 다정하게 부르는 표현이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어린 얼팡(二胖)의 눈에 다재다능해서 천재처럼 보이는 외삼촌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드라마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90년대에 경제개방의 흐름을 타고 변화해 가는 중국 동북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쯤 되겠다.


동북지역은 중국의 동북 3성(東北三省),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롱쟝성(黑龍江省)을 말한다. 이 지역은 예전에는 국영기업 중심 공업지대였는데, 90년대 개혁개방 경제 바람을 타며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업 문제가 컸던 곳이다.

주인공 췌이구어밍(崔國明)의 창업 분투는 그 시절을 살았던 동북지역 남자들이 경제 개방의 흐름 속에서 자신들도 그 흐름에 올라타 한몫 벌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얼팡(二胖)의 아버지 후어동펑(霍東風)과 더불어 직설적이고 호탕하고 유머가 있고 의리 있는 동북지역 남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줄거리보다 인상적인 인물에 집중하여 보면 더 재미있을 지도.

주목해서 볼 첫 번째 인물은 당연 남주 구어징페이가 연기한 외삼촌 췌이구어밍(崔國明)이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너무 다재다능해서 한 우물만 팔 수 없어서 고생했다' 쯤?

그는 학창 시절에는 풍운아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국영 공장에서 기술 핵심 인물로 일한다. 그는 기술이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에, 번번이 지각을 하고 밥 먹듯 조퇴를 해도 전 공장장은 예뻐라 했다. 하지만, 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경제의 바람을 타고 민간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영 공장의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구조조정 당한다. 새로 바뀐 공장장의 눈에 췌이구어밍(崔國明)의 '융통성'있는 행위는 '불성실'한 것으로 간주되어 '철밥통' 직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뛰어난 데다, 개혁개방의 바람이라는 시대적 흐름까지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가 한 일들을 나열해 보면 이렇다. 야간 업소에서 가수 활동, 노점 장기판으로 용돈 벌이, 변호사 시험 합격, 무협 소설 쓰기, 소공(小孔) 안경 제작 판매, 중고 의류 판매, 변속 자전거 제작, 러시아 모피 무역, 우표 되팔기, 길거리서 노래 팔기, 한국에서 건설업 노동자, 한국에서 식당 노동자, 한국에서 식당 운영, 산에 산삼 심기, 아버지가 평생 일했던 식당 띵칭러우(鼎慶樓)를 다시 열기 등이다.

스토리는 잔인하게도 그가 창업에 열정을 가지고 이것도 뚝딱, 저것도 뚝딱 도전하던 시기에 그가 뛰어들었던 일들은 매번 실패로 끝나게 설정했다. 우표 되팔기에서는 아주 맡은 빚까지 지게 된다. 그는 위험에 대한 면밀한 고려 없이, 경제의 새로운 흐름을 발견하면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만 집중하여 불나방처럼 일단 도전하는 스타일이었다. 부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창업에서 손을 털고 속죄하듯이 묵묵히 노동으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이 설정은 얼마나 잔인한가! 다재다능한 그가 반짝 반짝이며 분투할 때는 실패를 주더니, 마음이 회색빛이 되어 노동을 팔았을 때야 성공의 문이 열리다니....

사람들은 외숙모 리샤오홍(李小紅)이 죽은 후부터의 드라마가 재미가 없어졌다고, 리샤오홍(李小紅)의 역할이 이 드라마를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지 성토했지만, 내 생각에는 리샤오홍(李小紅)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부인이 죽자 이상향을 향해 반짝반짝 빛을 내던 외삼촌의 열정이 죽은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현실을 훌훌 벗어난 모습이 아니던가. 리샤오홍(李小紅)이 죽은 후의 외삼촌이 사는 모습은 너무 현실이여서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드라마가 갑자기 재미없어졌다고 느껴지는 것이지.


두 번째 인물은 여주 왕지아지아(王佳佳)가 연기한 외숙모 리샤오홍(李小紅)이다. 외삼촌 췌이구어밍(崔國明)이 부의 꿈을 좇는 과정에, 그녀는 말로는 꾸지람을 하면서도 묵묵히 남편을 지지했다. 남편의 창업이 뻔히 말아먹을 것을 알면서도 돈을 내줬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지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삼촌은 누나의 아들 얼팡(二胖)도 도맡아 키우고,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하는 친구의 딸도 데려와 돌본다. 그가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않으면서도 남의 아이를 돌보며 의리 있는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리샤오홍(李小紅)의 덕택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있기 힘든 통 큰 인물이다.

남주 구어징페이(郭京飛)와 여주 왕지아지아(王佳佳)는 드라마 표백(漂白)에서는 형사와 범죄자로 대립하는 인물로 나왔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부부를 연기했다. 둘의 부부 연기는 어찌나 자연스럽고 달콤한지 진짜 부부스럽다. 나는 이 둘이 처음으로 부부를 연기한 줄 알았는데, 이번이 벌써 3번째란다. 그럼 그렇지 호흡이 너무 잘 맞더라니.


셋째, 아역배우 빠추슈엔(巴楚軒, bāchǔxuān)이 여기한 얼팡(二胖). 나는 이 아역배우를 이 드라마에서 처음 만난 줄 알았는데, 짱하이쭈안(藏海傳)에도 잠깐 얼굴을 비친 적이 있단다. 그때는 배역이 너무 작아서 별 인상이 없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너무도 진짜 자기 성격 같은 연기에 내게 완전히 기억되었다. 퉁퉁한 몸에 낙천적인 성격이 딱 매치가 돼서, 조금도 연기스럽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다음 등장이 기대된다!

아 참, 얼팡(二胖)의 연기에 눈시울이 뜨거웠던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다. 얼팡(二胖)의 아빠는 완전 의리파인데, 이렇게 저렇게 싸움에 말려들어 반 평생을 감옥생활을 하고, 엄마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어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난 버려, 얼팡은 젖먹이 때부터 외삼촌(二胖)의 손에서 자란다. 엄마가 뭔 일로 잠시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또다시 떠나버렸을 때, 얼팡(二胖)은 외삼촌에게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울먹이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얼팡(二胖)이랑 같이 눈물을 흘렸다.


중국어도 하나 배워볼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아하이(下海)라는 단어가 자주 들리는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다로 내려가다'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여 '공무원·교사·국영기업 직원 등의 안정된 직업을 그만두고 장사나 창업을 하는 것'을 뜻한다. 1980~90년대 개혁개방 시기부터 생긴 표현이다. 주인공 췌이구어밍(崔國明)의 창업 분투가 바로 시아하이(下海) 행위이다. 게으른 나는 오늘에서야 사업이나 창업으로 뛰어드는 것을 왜 시하하이(下海)라고 부르나 찾아봤다. 시장경제를 위험하지만 기회가 많은 바다에 비유한 표현이라고 한다. 오 홀! 그렇군.


또 하나, 나를 폭소하게 만든 표현, 띠아오리엔즈(掉鏈子). 나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가 하고 사전을 찾아본 일이 없다. 드라마 속에 자주 나왔기 때문에 그냥 알아졌다.

단어 그대로의 일차적 의미는 자전거의 쇠사슬 체인이 빠져서 자전거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못하거나 실수를 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이번 조별 발표 정말 중요해, 평소에 팀모임에 제대로 안 나타나는 것까진 좋아. 조별 발표에서는 띠아오리엔즈(掉鏈子) 하지 마!" 뭐, 이런 식으로.

나는 드라마에서 단어적 의미 그대로 쓰인 경우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 단어적 의미 그대로 쓰여 나를 웃겼다. 이런 거지. 꾼(滾)이라는 단어의 기본 의미가 '구르다, 굴러가다'의 뜻이고, 확장 의미가 '꺼져!'인데, 코미디 영화에서 '꺼져!'라고 했더니, 상대가 앞 구르기로 퇴장해서 웃음을 주는 것과 같은.

외삼촌은 누군가 6배속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는 자기 기술로는 그것보다 10배속 빠른 것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부인을 졸라 연구 자금을 받아낸다. 연구 자금의 한계로 원하는 부품을 살 수 없었지만, 기존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말 만들어 내긴 한다. 얼팡(二胖)은 그 자전거를 끌고 자랑스럽게 등교를 한다. 하지만, 조금 달리다 보면 체인이 빠져서, 즉 띠아오리엔즈(掉鏈子) 해서 자전거를 끌고 등교하다 보니 자꾸 지각을 한다. 얼팡(二胖)과 외삼촌이 이 상황에 대해 티격태격하면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띠아오리엔즈, 띠아오리엔즈'하게 되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은 '자전거 체인이 빠진' 상황인데, 그들이 탓하는 것은 이 놈의 체인이 중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못하네' 상황이어서 웃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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