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를 준 걸까?

by 김동해

요사이 며칠간 고등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대학생 조카는 대학에 합격하던 날로부터 입시교육분야 사업에 뛰어들더니, 한 편으로는 대학을 다니고, 한 편으로는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그래서 광고 전단지를 뿌려야 하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썼다. 조카의 엄마, 그러니까 내 언니가 보기에 아르바이트비를 너무 과하게 주는 것이다. 30분만 하면 되는 일에 최저임금의 수배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시키니, 보는 엄마로서는 아들이 그 돈을 쓰는 게 안타깝다.

"차라리 엄마가 해줄게. 엄마는 최저 임금의 2배만 쳐주면 돼." 엄마가 제안한다.

"엄마는 늙어서 안돼. 애들이 안 받아." 아들이 거절한다.

전단지 돌리는데 젊고 늙은 게 뭔 상관이냐, 엄마는 아들의 사업이니 전단지를 더 정성껏 돌린다 등등으로 설득해서 엄마가 전단지를 돌리는 알바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전단지 뿌리는 일은 엄마의 '알바'가 아니라 '의무'가 되고 말았다. 조카는 엄마가 아들을 위해서 당연히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번도 제 엄마에게 아르바이트비를 준 적이 없다.


혼자 전단지를 뿌리를 일은 좀 낯부끄럽고 어색한 일이어서, 언니는 아들 녀석의 이모인 내게 같이 좀 따라다녀 줄 것을 요청했다. 노니 장독 깬다고, 무위도식하며 지내는지라 나는 기꺼이 도와주러 나선다.

오늘은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노려 수성구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 갔다. 이 학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한 교문으로 등교해서 골라가며 전단지를 쥐어줘야 했다. 우리의 마케팅 대상은 고등학생이다.

요사이 학교들은 교복을 입어도 되고, 생활복을 입어도 되는 식으로 허용을 해줘서 그런지, 학생들의 복장은 정말이지 중구난방이었다. '회색 바지는 중학생, 진청색 바지는 고등학생, 야구잠바는 고등학생, 남색 조끼는 중학생', 이러면서 고등학생을 골라내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여학생 한 명이 교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어, 여학생이다! 남고인 줄 알았는데, 남녀공학으로 바뀐 모양이다! 여학생에게도 전단지를 나눠줘야 하는 건가?' 나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정히 다가가 물었다.

"여기 남녀 공학이에요?"

학생은 수줍어하며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종종거리며 뒷모습을 보였고, 동시에 언니가 다급히 걸어와서는 내 옷깃을 잡아끌며 "재, 남자야, 남자."라고 했다.

"아니야, 여학생이야." 내 대답은 확고했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깜찍하게 귀여웠고, 치마를 입고 걷는 걸음새는 너무도 여성 여성이었다.

'저 애가 어떻게 남학생일 수 있냐고!' 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언니가 부연 설명을 한다.

"◯◯이 학교에도 남학생이 저러고 다녔어. 재 남자야. 요새 저런 애들 많아."

오, 마이갓! 나, 한국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나 보다. 요새 한국 한교가 이 정도로 개방적이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어머, 어떡해? 저 애 상처받았을까?"

나는 왜 입이 빨라서는 그딴 걸 물었던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줬을까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딴 일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머리를 길러 땋았고, 치마를 입고 등교했는데, 이렇게 꾸미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그녀의 성정체성을 수용해 주었다는 것일 테니까. 부모님의 수용을 받은 아이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을 테니까.


"내가 완전히 여자로 착각해 줘서 혹시 기뻤을 수도 있으려나?" 내가 언니에게 실없이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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