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때

by 김동해

내가 박사 시험을 마친 다음날 진리엔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는 내 박사 졸업논문 발표날이 수요일인 줄 알았단다. 와보려고 했는데 날짜를 잘못 기억해서 참관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시험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

"A플러스를 받았어." 나는 드디어 자랑할 곳이 생겨 기뻤다.

"차이교수는, 자기는 나한테 100점을 줬다며 거듭거듭 말했어." 나와 진리엔에게 차이교수는 체면치레 대단히 하는 가식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차이교수가 이렇게 말한 건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것이다.

"교외에서 오신 한 교수님은 논문 발표가 다 끝난 후에, 다른 교수님들께 자기가 가져온 선물을 돌리시는 거야. 발표를 하는 학생은 정작 아무것도 준비를 안 했는데. 조금 민망한 거야. 선물을 준비했어야 했을까?"

진리엔의 답은 선물을 준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사람 3명한테 물어봤는데, 2명이 안 주는 게 맞다고 했단 말이야."

"너, 생각해 봐. 너는 나중에 교재도 출판할 생각이라면서, 교수님들과 관계를 좋게 해 놓으면 그때 뭔가 도움이 필요할 때 부탁하기 쉽지 않겠어?"

'너, 참 현실적이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진리엔은 논문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며 나를 좀 보고 싶단다. 하지만 자기는 시간이 넉넉지 않아 나보고 자기 집으로 올 수 있겠냔다.

"물론이지."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주말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그녀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면 내가 가는 것이 맞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느즉히 아침을 먹고, 컴퓨터로 이것저것 하는데, 일주일 만에 온 이 한가함이 너무 좋은 것이다. 놀러 가고 싶지 않지만, 약속을 왔다 갔다 깨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길을 나선다.

진리엔 집에는 아이들이 둘 있으니, 빈 손으로 갈 수는 없다. 선메리의 펑리수를 사가면 제일 좋겠는데, 거기까지 걸어갔다 오면 2시에 가겠다고 했는데, 많이 늦어질 것 같다. 집 앞에도 선메리 비슷한 이즈슈엔(一之軒) 빵집이 있긴 한데, 가격만 비싸고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집 앞에서 과일을 샀다.

진리에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진리엔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와 계셨고, 베트남인 친구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놀러 와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나도 바쁜 사람이라고!'

진리엔은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된 게 아니라, 토요일 이런 상황이 될 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면 매주 토요일 3시 30에 집을 나서서 서너 주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 집에 모여서 아이들 성경공부를 시키기 때문이다. 베트남인 친구와 아이는 같이 성경공부를 가기 위해 와있었던 것이다.

진리엔은 3시 30분에 아이들이 밖으로 놀러 나가는데 나도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놀이터로 놀러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 3시 30분으로 딱 정해 놓은 거지? 햇볕이 좋은 지금 나가면 안 되나?'

3시 30분에 준비를 하고 나왔을 때, 집 앞에 차가 한대 이미 대기해 있었다.

'놀이터를 차를 타고 가? 택시를 부른 거야? 아님 아는 사람이야?'

도착하고서야 진리엔이 말한다. 이 활동은 요 나이또래의 아이를 가진 주부들이 돌아가면서 집을 제공해서, 아이들이 모여 놀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나도 가도 되는 거야?"

"그럼, 그들은 다 개방적이야. 누구든 환영해."

그렇게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집에 갔고, 그곳에는 서녀명의 새댁들이 네다섯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와 있었다. 진리엔은 '아이들을 모여 놀게 한다'라고 했지만, 내 시각으로 표현하면, '기독교적 아이로 만드는 교육을 시켰다'이다. 교회에서 파견되어 나온 듯한 나이 지긋한 한 중년 여성이 주님주님 어쩌고 하는 노래를 선창하고 아이들이 따라 부르게 했다. 또 한 중년 여성은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는 등 질서를 잡았다. 아이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키기 위해 두 명이나 파견된 것이다. 정확하게는 세명이다. 자기 차를 몰고 와 우리를 이곳까지 태워다 주고 간 아주머니까지.

'이건 너무 자연스럽지 않지 않나?'

하지만, 진리엔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새댁들은 누가 일이 생기면 아이를 며칠간 돌봐주기도 한단다. 왜 종교라는 이름으로 묶여서야 서로를 돕는 거지?


성경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거부감이 들어, 그만 집에 가겠다고 하고 나왔다. 아이들이 종교를 접하는 것이 엄마가 교회를 가니까 그냥 자기도 서서히 그렇게 되었다가 아니라, 마치 종교지도자가 아이들 머리가 굳기 전에 그를 위해 알을 낳는 닭이 되도록, 어릴 때부터 아주 철저하게 세뇌를 시키듯이 한 곳에 모아 성경 공부를 시키는 모습이 나는 아주 못마땅했다.


진리엔은 정말 꾸준히도 자기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나보고 오라고 연락을 한다.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가지 않는다. 나는 종교인들의 이런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내가 천국에 못 갈까 봐 걱정이 돼서 나를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종교지도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누군가를 자기 종교로 끌어들여야 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어수룩한 나를 선택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삐홍은 나를 불교 행사에 부르고, 진리엔은 나를 교회 행사에 부른다. 내 어디가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지?

'나, 어수룩하지 않아.'

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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