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으로 별 볼 수 있는 알베르게
2012년 9월 2일 일요일
날씨 : 온도가 어느 정도는 올라간 것 같으나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엄청 붐
걷기 : 부르고스(Burgos)에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까지 (20km)
새벽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자라매장에서 산 카디건을 꺼내 입고도 동글동글 말아 겨우 잤다. 정말 추웠다.
다들 일찍 눈뜬다. 아침식사는 7시 50분이라고 했는데, 7시 30분에 다들 준비가 되어 식사를 하는 탓에 나는 씻다 말고 아침을 먹으러 가야 했다.
버터도 아니고, 마가린이 나왔다. 버터가 안 나왔다고 투덜댈 일은 없다. 돈을 받고 아침을 제공해 주는 사립 알베르게가 아니고서는, 버터가 나오는 곳이 없다. 에마우스의 오스피탈레로는 중세의 옛 성에 사는 귀부인처럼 하도 근엄을 떨었기 때문에 버터가 나왔어야 한다는 거지, 도네이션 알베르게에서 버터를 기대했을 리가 있나. 무엇보다, 부족한 양 때문에 빵을 집어들 때마다 서로들 눈치를 봐야 했다.
에마우스의 오스피탈레로는 마지막까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길 가면서 먹으라고 초코스틱을 하나 준비했다, 초코스틱을 입구에 두겠다.' 하더니 그게 도네이션 상자 옆이었다. 초코스틱 하나씩 집어가면서 아침식사에 대한 도네이션을 하라는 뜻이다. 사립 알베르게에서는 돈 내고 권리만큼 사용한다는 편리함이 있다면, 도네이션 알베르게는 내 형편에 맞게 낼 수 있다는 훈훈함이 있어서 조금밖에 기부를 못하게 되면 마음이 막 미안하고 이래야 하는데, 이건 뭐, 사립 알베르게보다 더 많이 뜯기고, 기분은 꿀꿀하고.
노란 화살표가 부르고스의 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한참이나 안내한다. 어제, 동갑이 강변 산책로를 따라 부르고스 대학까지 한번 가보라고 했으나 발이 아파 단념했었다. 화살표를 따라 걷자니 다 보게 되는 것을, 어제 고생 안 하길 잘했다.
출발이 늦어서 그랬던지, 오늘은 완전 혼자다. 길도 참 단조롭다. 누군가 나무 위에 신발을 걸어두고 갔다. 버려두고 간 것이지만 걸어두고 간 것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신발이 망가지거나, 가져온 옷가지들이 무거워져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다. 특히나 신발의 경우에는. 같이 걸어온 정리(情理)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일부를 두고 가는 냥, 순례자들의 애도를 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는 곳에 두고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신발은 이미 스스로 애도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어울리는 나무를 찾았을까? '나는 양지바른 곳에 묻혔습니다!'이다.
2시쯤 목적지에 닿았다. 침대가 없단다. 알베르게 내부를 지나 창고 같은 곳으로 안내한다. 다시 보니 체육관이다. 고작 이런 곳을 5유로나 받는다. 알베르게는 6유로다. 알베르게 내부는 온통 돌벽돌로 되어 있고, 벽돌 하나하나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이 오래되어 보인다. 내가 딱 좋아하는 건물인데, 이런 곳에서 못 자다니 안타깝다.
체육관 안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다음 마을까지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페파니는 이미 체육관에 매트리스를 펴고 있었다. 산토도밍고에서 전 굽는 것을 도와주던 인도네시아 아가씨다. 에이, 나도 그냥 여기서 자기로 한다.
반으로 접힌 접이식 침대를 펴자 벌레를 짓이긴 듯한 핏자국이 보인다. 바꿔 달랜 들 더 나은 매트리스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체육관 안에 매트리스를 펴고 자리 잡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어제는 호텔 급이었고, 오늘은 체육관에서 노숙은 겨우 면한다.
밤에 화장실에 가기 편하도록 화장실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다. 스페인 할아버지 두 명이 내 옆에 와서 매트리스를 펴는데, '이건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싶다. 또 동양여자의 자아가 발휘되어 내 매트리스를 멀리로 끌어다 옮겼다. 두 할아버지는 두 아줌마처럼 수다에 여념이 없다. 공부 삼아 들어보는데 뜻은 하나도 모르겠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단 한 곳뿐이고, 침대도 32개뿐이라고 한다. 그래도 정상적인 경우였으면 알베르게 안에 묵을 수 있었다. 느려진 걸음을 감안하여 쉬지 않고 걸어 알베르게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상적이지 않은 변수는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떼거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일찍 와도 한참을 일찍 왔던 것이다.
나부터 한국인 학생에 대한 원망이 대단하다. 다른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걷지 않고, 버스를 타고 와 이른 아침부터 알베르게 문 앞에서 해바라기를 해버리니, 저 아이들의 선생은 도대체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난들 아나.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쉬는 바람에 또 저들과 일정이 같아져 버린다.
스테파니에게는 동행이 생겨있었다. 같은 동양계라 만만하여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스테파니의 동행은 국적은 중국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고 있단다. 이름은 샤란이다. 둘은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나는 반은 알아듣고 반은 놓치고 한다.
이야기의 맥락을 잘 따라가면 단어 몇 개만 캐치하고도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파악이 되지만,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로 전개되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이야기가 급선회하여 내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스테파니는 이야기의 맥락을 한 번씩 집어주고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스테파니는 서른한둘쯤 되었을까? 그녀의 웃음은 치장이 없이 마냥 너무 즐거운 웃음이다.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줄 것 같지 않는 스테파니의 어린아이 같은 속이 부러웠다.
샤란은 나와 비슷한 또래 같다. 그녀의 눈빛은 너무도 한국인 같다. 한국인이면서 아닌척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국적이 다르면 눈빛이 다른가 하면, 그렇다! 그녀는 내게 호감이 없는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필그림 메뉴로 맥주에 절인 닭고기를 주문했다. 너무 맛있었다.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고 싶지만, 혹시 실패했을 경우에 배고플 밤을 생각하면 안정적인 메뉴를 시키게 된다. 닭고기는 어디서든 먹을 만했다. 샤란은 샐러드 한 접시만 시켰다. '저렇게 전채 한 접시만도 주문이 되는구나.' 옆 테이블에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앉았다. 뭘 시킬지 몰라하고 있으니, 까마레로(camarero, 남 종업원)이 나에게 메뉴판을 주며 좀 도와주라고 한다. 뭐 그 정도쯤이야.
저녁을 먹고 체육관으로 갔더니 아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 이제야 도착한 사람들도 있다. 매트리스를 이동하던 한 스페인 남자가 저쪽에 누우면 밤에 별을 볼 수 있으니 나 보고도 옮기란다. 체육관의 한쪽 벽면 꼭대기에는 투명한 창이 있어 진짜 별을 볼 수 있겠다. 멋지다! 나도 옮겨야지!
에이, 체육관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매트리스를 끌고 가기 귀찮다. 화장실까지 걸어오기도 너무 멀다. 그냥 별 안 보고 자기로 한다.
오늘밤 추워서 잘 수 있을까? 담요를 한 장 받긴 했지만 추울까 두렵다. 저기서 벌써 누군가 기침을 해대고 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다. 걸치고 잤던 카디건과 바람막이 점퍼를 다 벗어치웠으니 말이다.
체육관에서의 하룻밤은 무서웠다. 초저녁부터 자기 시작했더니 11시에 눈이 뜨였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누군가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급히 따라갔다. 무서운 꿈도 꿨다. 신음소리를 내다 깼다. '하늘님, 이 무서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고서야 겨우 다시 잠들었다.